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자기와 같은 이름의 꽃인 나르키소스, 즉 수선화(水仙花)가 된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연관 지어,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적당한 나르시시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자기애”와도 연관이 되는데요, 상대방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과도 연결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어느 정도는 나르시시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애가 있는 사람은 삶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한껏 글로 자기애를 뽐내볼까? 하면서도 막상 쓰려니 부끄럽고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뜬금없을 것 같고. 그러다가 문득, 5학년 아들이 학기초 학교에서 활동한 종이 한 장이 떠올랐다.
날라가는 글씨로 꾹꾹 진심을 눌러 담은 내용은,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좋은 이유 10가지’. 물론 아빠 버전도 있다.
평소에 나는 늘 아들에게 장점, 잘하는 것, 칭찬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아들은 의례히 “엄마 좋아, 엄마 사랑해요.”라는 표현은 종종 하지만, 이렇게나 구체적인 ‘엄마가 좋은 이유’를 그것도 10가지나!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궁금해졌다. 다소 또래에 비해 무뚝뚝한 편인 아들이 쓴 내용이라 더 궁금해졌고, 이를 통해 나의 장점, 내가 잘하는 것을 슬쩍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좋은 이유*
-초5 아들 씀.
1. 일본어를 잘하십니다.
2. 베이킹 강사 신게 대단합니다.
3. 요리를 잘하신다.
4. 예쁘시다.
5. 다쳤을 때 걱정해 주신다.
5. 글을 잘 아신다.
6. 문과셨다.
7. 국어를 잘 아신다.
8.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신다.
9. 똑똑하시다.
10.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무심해 보이지만 관찰력이 좋고 섬세한 아들 녀석이 써 내려간 글이라 기분이 묘했고, 읽는 내내 낮고 굵은 톤의 목소리의 아들의 음성지원이 되는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아들 시선에서 ‘나’란 사람의 장점, 특기, 이런 것들을 들여다보니 다소 생소했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중에서 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도 있고, 막상 보니 기분이 좋은 것도 있었고 뭉클한 것도 있었다. 도대체 아들은 문과 신게 , 살아계셔서 다행이라는 것은 왜 쓴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도 아들에게 아들이라 좋은 이유를 써주었다.
나는 그저 40대에 접어든 '나'를 들여다보고 사랑하는 방법을 아들의 글을 통해, 남편의 따듯한 응원의 말 한마디를 통해, 그리고 요즘의 글쓰기 모임을 통해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를 기록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위해 노력하는 나날들이 있어서 적어도 나중에 힘든 일이 닥치거나 갱년기나 치매가 온다 하더라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지금 기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