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비 오는 날의 기억들
비를 좋아하시나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눈 오는 날은 더더욱. 그냥 내가 계획한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불편함을 줄 수 있는 날씨라면 모든 게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날씨 예보를 미리 보고 우산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었다.
어릴 때 엄마는 딸 셋을 키우면서 갑자기 비 오는 날 딸들을 그냥 오게 하신 적이 없다. 늘 우산을 챙겨 교문 앞에 서 계셨던 엄마다. 엄마로부터 전달받은 우산을 쓰고 별말 없이 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찰방찰방 엄마 옆에서 언니 옆에서 걸어오던 하굣길이 생각난다.
일찍부터 운전을 시작한 엄마는 언제부턴가 교문 근처에 차를 대고 서계셨고, 고등학교를 각각 다른 곳을 다닌 우리 세 자매를 살뜰히 챙기시며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궂은날마다 딸들의 하교를 책임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자식들에게 지극정성이셨고 그 정성은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족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기분은 ‘안도감’이었다. 늘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울타리 같은 존재로 곁에 계셔주신 부모님 덕분에 우리는 어린 시절 좋은 기억들을 많이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른이 되고 스스로 우산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고부터는 어디에선가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불안감이 있어서 일까, 비는 절대 맞으면 안 될 것처럼 굴었다.
외출을 해야 할 때면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 날씨 예보에 우산 그림 없이 구름만 꼈어도 가방에 우산을 챙겼다. 비가 오는 데 우산이 없는 상황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비 오는 날 자체가 불편해서 싫었고 옷과 신발이 젖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이랬던 내가 비를 좋아하는 남편을 만났다.
연애할 때 그는 차 안에서 굵은 장대비가 쏟아질 때, 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고 했다. 살면서 전혀 귀 기울여 본 적이 없었던 빗소리. 그냥 비가 오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었고, 그는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데이트를 하러 나간 어느 날, 나는 그 비 때문에 애써 신고 나온 예쁜 샌들과 맨발이 젖고 종아리에는 물이 다 튀는 것이 싫었으며 행여 미끄러질 까 봐 조심조심 걷는 게 불편했다. 이렇듯 나는 비 오는 날의 낭만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를 만나고 15년째 살아오면서 점점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비 오는 날 굳게 닫은 창문을 조금씩 열고 나무를 적시는 비를 바라보게 되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뒤 젖어있는 나무들과 땅, 흙냄새를 알게 되었다. 서서히 비 온 뒤 맑은 하늘의 청명함, 비로 인해 자연이 숨 쉴 수 있다는 고마움도 함께 말이다.
무엇보다도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아들을 키우게 되면서, 비를 사랑하는 두 남자와 살면서 비가 오면 여행도 외출도 소풍도 안 된다고 생각한 나의 생각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길에는 날씨가 궂어도 우산 쓰고 다니면 되고 우비 입고 다니면 되고 못할 것이 없었다. 그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 가치관이 너무 꼿꼿했고, 주위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변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이를 들어갈수록 점점 더 유해지고 나의 고집들을 하나 둘 내려놓을수록 다른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다만, 아들이 몇 년 전부터 해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못 이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인다. 그 꿈은, 비 오는 날 텐트 안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컵라면을 먹는 것.. 캠핑을 1도 모르는 부모인 데다가 날씨까지 맞춰줘야 하다니, 은근히 쉽지 않다. 우중 캠핑은 상당히 힘들다던데.
한강에서 비 오는 날 컵라면 먹기는 해 줬었는데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들떠있던 녀석의 표정이 생각난다.
비를 좋아하는 아들이 비에 벌벌 떠는 나처럼 크지 않기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기를.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심어준 좋은 기억들을 아들에게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