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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Nov 03. 2021

그들에게 베이킹 수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당신은 무엇에 몰두하나요.

 나는 ‘베이킹’이라는 취미가 일이 되고 난 후 꾸준히 하다 보니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우여곡절들도 있었고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들이 있기도 했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전전긍긍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모든 것들은 인과응보이기도 했고 혹자가 말하는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맞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꾸준히 활동하면서 고민하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번 강의들을 하면서 수강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주고받는 감정의 나눔이 주는 여운도 상당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공방을 운영하던 수년간 다녀갔던 수강생들을 통해 얻은 에너지와 다양한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들을 통해 배웠던 것들이 많아서 늘 감사한 마음이 있었다. 가끔 그분들께서 건네주시는 따듯한 말 한마디, 소소하게 보내주시는 마음을 담은 선물들을 받을 때마다 내가 더 받는 것들이 많은데 하는 생각에 감사함과 벅찬 마음에 뭉클해지곤 했다.    


 늘 사람들을 접객하는 일이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요시 여겼다. 다행히 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편이라 다양한 삶에 대해 관심도 많았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감정을 나누며 어우러져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수업을 진행하는 몇 시간 동안 집중하는 수강생 분과의 시간은 나에게 많은 인생 공부가 되기도 했다.    


 가장 많았던 수강생의 형태는 나와 같은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이었다. 평일 오전 시간에 주로 강의 개설을 하다 보니 비슷한 또래 혹은 더 어린 아가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시는 공감대 형성이 많이 되는 주부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들은 경력단절을 걱정하며, 때론 휴직 중에, 육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양한 돌파구로 ‘베이킹’이라는 취미를 선택하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베이킹 수업만 해주면 그만이지만,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학부형으로써, 인근에 사는 수강생들과의 친밀한 관계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결혼과 동시에 홀로 연고 하나 없는 동네에 신혼살림을 차린 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너무나 뼈저리게 느껴왔었다.    


 함께 육아에 대한 고충도 나누고, 교육정보도 교류하고, 우리 아이보다 좀 더 큰아이들을 키우는 수강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년 후 우리 아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시너지 효과가 참으로 유익했다. 그녀들은 베이킹 수업을 통해 즐거운 취미를 즐기고 배움을 얻고 돌아가셨다면, 나는 그녀들을 통해 좋은 인생 공부와 좋은 사람을 얻었다.    


 어느 날,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수강문의를 하신 후, 몇 주간 나에게 베이킹을 배우러 오셨던 수강생 한 분이 생각난다. 그녀의 자식들은 대학생과 사춘기 고등학생이었고, 일로 한창 바쁜 남편이 계신 평범한 가정의 주부셨다. 처음 수업 때 조금씩 늘어놓으시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두 번째 시간에는 더 많아졌고 깊어졌으며, 수업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는 처음의 소극적이고 위축되어 보이셨던 것과는 다르게 점점 편해졌고 밝아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가족들의 크고 작은 행사에 사용할 케이크나 타르트 등을 주문하시거나 밖에서 따로 만나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었다. 직접 담근 과일청을 건네주시는가 하면, 마지막 수업 때에는 대학생인 따님과 함께 오셔서 함께 즐겁게 베이킹을 배우고 가셨다.  처음에 조심스럽고 수줍게 수업 문의를 하고 방문하실 때의 예민해 보이셨던 분위기와는 달리 몇 주 후 그녀의 밝아진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만들어 간 베이커리들을 가족들과 맛있게 드셨다고, 가족들이 좋아해서 기쁘셨다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당연하면서도 별거 아닌데 우리가 놓치고 사는 그것, ‘가족들의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가 베이킹을 배우면서 달라지는 말투와 표정, 행동의 변화를 가족들도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의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전업주부로써 가정을 꾸리며 아이들을 돌보고 남편을 챙기며 희생 아닌 희생을 하고 살아가면서 느껴왔던 애환들을 ‘베이킹’이라는 취미와 함께 ‘나’라는 그녀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쏟아내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한 번은 밝고 선한 이미지의 수강생 분과 몇 달에 걸쳐 베이킹 수업을 해드렸던 적이 있었다. 몇 달간 배우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밝은 이미지와는 달리 가정사의 아픔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고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고, 베이킹 수업을 통해 어쩌면 그녀에게 제2의 경제적 삶을 열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성심성의껏 가르쳐 드렸다. 그녀가 동네에 작은 식당을 냈을 때에는 일부러라도 자주 찾아가 식당을 이용하기도 했고, 마음을 담아 그녀가 눈앞에 닥친 고충을 잘 견뎌내길 바랬다. 베이킹을 하는 시간만큼은 고충도 잊고, 나만 바라보는 시간이라서 너무 좋다고, 베이킹이 너무 재미있다고 밝게 웃으며 이야기해주시던 그녀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마지막으로 몇 달간 꾸준히 배우러 오셨던 필라테스 강사였던 그녀가 떠오른다. 베이킹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푹 빠져서 연습도 많이 하시고 자주 구워서 그녀의 필라테스 수강생들에게 나눠드리는 재미도 크다고 했다. 나에게 전 과정을 다 배우시고 난 후에도 다양한 베이킹을 하시면서 행복해하셨고, 본업 이외에 취미생활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며 베이킹이라는 취미를 갖게 해 주어 감사하다며 모든 수업을 마치던 날, 감동스러운 장문의 편지와 함께 선물을 전해주시며 감사함을 표현하셨던 참 기억에 남는 수강생 중 한 분이기도 하다.  그녀가 본업 이외에도 오로지 취미였는데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베이킹을 했던 시간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공방을 찾아왔던 수많은 수강생분들, 그들이 베이킹을 배우려고 하는 이유들은 가지각색 참으로 다양했다.  그들에게 베이킹하는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다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베이킹하는 시간은 어떤 의미였냐고 다시 되묻고 싶다.

 

나에게 취미였던 베이킹하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 한 가지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해야 할 본업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작업을 함으로써 힐링을 느끼기도 했고, 결과물이 잘 완성되면 뿌듯함을 느끼며 그것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정성껏 포장해 선물하고 맛있게 먹었다는 말 한마디에 기쁨과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베이킹하는 시간이 좋았다.    


 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혹은 내가 먹을 건강한 간식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나중에 창업이나 취업을 생각해서, 지금 나에게 처한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한 집중할 거리를 찾기 위해, 누군가에게 나눔을 하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등 정말 다양한 이유들로 그들은 나의 베이킹 공방을 찾아주셨다.     


 나는 베이킹을 가르치면서 그들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와, 다양한 삶 속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 그리고 각자의 처한 상황 속에서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며 삶을 채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나’라는 강사를 기억해주고 안부를 묻고 찾아와 주시는 분들을 뵈면서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배운 게 참 많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게 일이 꼭 아니더라도 다른 형태로라도 괜찮다. 삶은 계속되기도 하고, 사람은 계속 변하기 마련이다. 살면서 겪는 많은 굴곡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무언가에 몰두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찾아내어 극복해 내면 되는 것이다. 그 극복 방법 중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나와 함께한 베이킹 수업 시간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내 공방을 찾아주셨던 많은 수강생들이 가끔 그립다. 함께 모이는 시간을 마땅히 마련하지 못한 채 급히 이사를 오게 되어 아쉽기도 했고, 나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늘 죄송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외부 강의에서 꾸준히 만나는 다양한 수강생분들 덕분에 또다시 힘을 내본다. 문화센터 수업 특성상 단체수업이다 보니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몇 주, 몇 달, 몇 년간 꾸준히 나를 찾아오시는 수강생들에게 안부를 주고받는 인사 정도로도 나는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있어서 힐링타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베이킹 강사라는 것, 대단하진 않더라도 참 의미 있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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