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날이 선선해지더니 이내 쌀쌀해져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고 오들오들 떤다. 날이 쌀쌀해져 간다는 뜻은, 곧, 베이킹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쁜 시즌이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다. 하반기에 몰려있는 다양한 이벤트성 기념일들 덕분에 10월~2월까지는 늘 바쁘게 지내곤 했었다. 하반기는 바쁜 시즌이지만 공방을 운영하고 있지 않는 지금은 그때보다는 여유로운 편이기는 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씩 이전 동네에서 만났었던 수강생들이나 디저트를 주문하시고 찾으러 오셨던 많은 분들 생각이 난다.
전 동네에서 다년간 베이킹 공방을 운영해왔기에, 오래 알고 지낸 수강생들이나 단골고객님들은 이사를 온 지금까지도 가끔씩 안부를 물어주신다. 안부 이외에도 선생님의 케이크와 디저트 맛이 그리워서 만들어 달라고, 왜 이사 갔냐고 볼멘소리를 하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뭐라고, 이제 주위에 나보다 더 잘하는 케이크 샵이나 베이커리 카페들도 많이 생겼을 텐데,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는 건지 너무나 감사하고, 순간적으로 울컥 감동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사를 한 후, 심해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내 일을 도대체 어찌해야 할까 방향이 서지 않아 많이 움츠러들었던 때였다. 어느 날은 정말 수년 전 공방을 내기 전, 집에서 홈베이킹 클래스를 진행하던 초창기 때의 수강생분이 전화가 왔다. 나는 그동안 수업을 해 온 수강생분의 연락처를 다 저장해놨었기에 전화를 받긴 했지만, 사실 누구신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전화하신 분은 블로그를 보시다가 내가 멀리 이사 갔다는 것을 아셨고, 내 강의를 들으시고 몇 번 케이크를 사다 드셨던 수강생 겸 고객님이셨다. 예전에 배웠던 레시피를 잃어버려 조심스럽게 다시 받을 수 없을까 하는 내용과 함께 안부 전화를 주셨던 것이었다.
소심하게 집에서 홈베이킹 클래스를 열었을 때, 지역 카페에 홍보를 하고 수강생을 기다리던 시절, 얼마나 모이겠나 싶었었는데, 나중에는 수업을 대기를 걸어야 할 정도로 클래스는 생각보다 인기가 많았다. 집에서 홈베이킹 클래스를 하던 시절의 수강생 분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알게 모르게 감동이 밀려왔다. 수강생분께 레시피를 찾아 보내드리고 난 후, 그분으로부터 응원과 감동의 문자를 받았다. 나를 잊지 않아 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에 찌릿했다. 나라는 미약한 존재를 기억해 주심에 감사했던 날이었다.
공방을 내고 수업을 할 때였다. 어느 날은 자매가 함께 공방에 수업을 신청하셨다. 언니분이 해외에 살고 계시기에 잠깐 한국에 나온 참에 임신한 동생과 함께 베이킹 수업 4회 코스를 신청하신 거였다. 당시 이 자매들을 보고 있자니 우애 깊고 서로 챙기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특히 언니분이 조카들을 챙기는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동생분은 출산을 하고 나서도 꾸준히 베이킹을 배우러 오셨고, 아이들 생일 케이크나 간식 주문을 하시곤 했다.집도 근처여서 이런저런 마음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심스레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외국으로 돌아간 언니 분은 늘 조카의 생일 케이크를 동생 몰래 주문을 하셨고 나는 동생분께 깜짝 전달을 해다 드렸다. 그리고 내가 이사를 가게 되고 공방 문을 닫게 되었을 때, 마음을 많이 써주시고 아쉬워해 주셨던 수강생들이셨다.
“선생님이 멀리 가신다니 아쉬워요. 선생님의 당근케이크는 최고였어요. 멀리 가셔도 케이크 사러 갈 거예요.”라고 아쉬움을 표현하셨던 동생분의 말씀에 미안하기도 하고 먹먹한 감동이 밀려왔다.
이사를 온 후에도 해외에 살고 있던 언니분이 잠깐 한국에 나오셨을 때, 그녀는 먼 이곳까지 케이크를 가지러 오셨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내가 강의하는 쇼핑몰까지 케이크를 가지러 오셨고, 얼마 전에도 너무나 미안해하시면서 조카 생일 케이크를 동생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시는 분이셨다. 나로서는 강의를 가는 김에 전해드리면 되는 것이니까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강의하러 가는 날이었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며 부탁받은 케이크를 배달해드리면서 만난 동생분이 반갑고도 수줍게 건네는 쇼핑백. 쇼핑 백안에는 지퍼백에 곱게 싸져있는 바나나 몇 개, 초콜릿, 과자, 음료 등이 들어있었다.
“선생님 수업 끝나고 먼 길 가시는 길에 주전부리하시라고 허기질 때 드세요. 집 앞까지 와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언니분의 감사의 문자. 먼 곳에서 시차도 있을 텐데 늘 예의 바르고 깍듯하신 언니분의 상냥한 문자는 보는 사람을 늘 기분 좋은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자매의 따듯한 마음과, 그 마음을 전달한 나 역시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던 시간이었다.
요즘 한 광고에 나오는 문구들과 내용이 인상적이다.
마음+마음 = 자신감, 누군가에게 힘을 더하는 마음 공식, 마음이 합니다.
나는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잔잔한 감동을 느끼며 생각에 잠긴다.
내가 살짝 위축되고 주춤할 때, 나를 잊지 않고 알아봐 주고 찾아주는,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누군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때, 우리는 힘을 낼 수 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전달을 하고 강의를 가는 길. 발걸음도 가벼웠고 강의도 순조로웠고 모든 것이 좋았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마음은 온기로 가득 찼던 그런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