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슈 Oct 13. 2021

휘리릭여사, 는 것은 설거지 속도랄까.

설거지 좋아,,아니 잘 하십니까?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설거지를 한다. 오전에는 사과타르트를 굽고 설거지를 했고, 오후에는 아이들 쿠키만들기 수업을 마친 후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매 끼니, 방금 전까지도 저녁 설거지를 했다. 개수대 가득한 설거지거리들을 보고 주부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하는 용어, ‘설거지옥’, ‘설거지산’. 이제는 나의 특기가 되어버린 ‘설거지’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한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베이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주문과 수업 준비를 혼자 해내야 했다. 하루의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개수대 한가득 쌓여있는 설거짓거리들이였다.

 공방을 운영할 땐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가급적 설거지는 꼭 하고 퇴근하려고 했다.

 음식을 하는 공간에 행여 벌레라도 꼬일까 심히 두려워 늘 깨끗하게 청소를 했었다. 아이 픽업 시간이 가까워져오는데 설거지 마무리를 못 했다면 아이를 픽업해 공방에 들러서 뒷정리를 하고 퇴근을 할 정도로 청결이 중요했다.      


  베이킹할 때마다 매번 유제품을 사용하기에, 산처럼 쌓이는 설거짓거리들은 모두 미끄덩거려서 뜨거운 물로 씻어낸 후 한 번 더 세제로 닦고 헹궈내야 했다. 고무장갑을 사용해야 하지만 바쁘거나 급히 도구를 써야 할 때는 그냥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기도 해서 내 손은 물 마를 날이 없었다. 내 손은 건조했고 겨울철에는 따끔거리고 갈라지더니 피가 나기도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곁에서 봐온 지인들은 나에게 핸드크림을 선물해주곤 했는데, 사실 크림을 챙겨 바를 시간조차도 없을 정도로 내 손은 늘 바빴다.     


 나는 원래도 손이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혼자 모든 것들을 해내야 하다 보니 일 처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 손이 빠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공방에 놀러온 지인들은 내가 이것저것 반죽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하며 설거지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참 빠르다.’, ‘부지런하다.’는 말을 했다. 급기야는 일 처리가 빠릿빠릿한 사람이라고 ‘휘리릭 여사’라는 별칭을 지어주었다.     


 그렇다면, 그런 휘리릭 여사의 집은 어땠을까?     


 일에 치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점점 살림은 뒷전이었고, 바쁜 시즌에는 빨래를 걷은 옷더미에서 아이 양말을 찾아 신기고 옷을 입히는 일도 허다했다. 나는 최소한의 것들을 하면서 내 일과 육아와 살림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남편은 나를 이해해 주었고 고맙게도 스스로 빨래를 접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내가 집안 살림을 깔끔하게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은 빠르게 해치우고 늘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기에 아마 그도 별말 없이 집안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지 않았나 싶다. 습관이 무섭다고, 그때 단련된 남편의 집안일 실력은 내가 공방을 그만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빨래를 개키는 일, 설거지하는 일, 청소 등 그는 말하지 않아도 참 잘 한다. 그의 조용한 내조와 세심한 배려 덕분에 나는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공방을 접고 문화센터에서 베이킹 강의만 하고 있는 중이다. 공방 운영을 마무리하면서 아쉬움이 가득했었는데 한 편으로는 두 집 살림을 마무리하게 되어 홀가분한 것도 있다. 대신 공방할 때 사용하던 오븐을 비롯한 베이킹 도구들이 집안으로 한가득 들어와서 부엌이 어수선한 것은 있는데, 곧 이사하면 차차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강의 준비나 레시피 테스트가 있을 때, 가끔 선물할 일들이 생길 때만 집에서 베이킹을 하곤 한다. 공방할 때 수준의 엄청난 설거짓거리가 쌓이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작업 후 쌓여있는 설거짓거리들을 보면 가끔 그때 생각에 젖어 든다. 늘 바빴고 손은 쓰라렸지만, 덕분에 얻은 것은 엄청난 설거지 속도와 웬만큼 설거짓거리가 쌓여도 끄떡없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닐까.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 그런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나, 휘리릭여사가 존재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미가 일이 되었고, 아들은 성장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