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강사의 트렁크(운전실력, 그리고 또.)
“선생님, 이번 주 토요일 핼로윈 쿠키 수업 7명, 케이크 수업 10명입니다. 확정인원은 전날 다시 연락드릴게요!”
문화센터 담당자로부터의 연락이다.
보통 잡혀 있는 수업의 개강 여부는 약 일주일 전 즘에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온다. 이 정도 인원수가 되니 개강하시겠는지 여부를 강사에게 묻곤 한다. 물론 간혹 담당자분들이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에는 강사가 챙겨야 하고 연락이 없으면 출강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약속이 되어 있기도 하다.
최종 수강인원은 보통 전날에 확정이 된다. 중간에 수강 인원수가 엎치락뒤치락 변동이 있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최종 인원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대략적인 인원수만큼의 재료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확정인원 연락을 받으면 그제야 인원수별 짐을 싼다. 즉, 부자재 및 재료의 재고관리가 철저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갑자기 인원이 늘어 어떤 재료가 부족해진다면 급히 로켓 배송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라도 맞춰 채워 놓는다.
한 타임의 수업을 준비하기까지 3개월 전에 품목과 일정을 짜고, 그사이에 문화센터와 강사는 강의 홍보를 하고, 강의 일주일 전에 개강 확정을 하고, 개강 하루 전날 최종 인원수 파악을 하고 그에 맞춰 짐을 싸고 수업이 진행된다.
초반에는 실수도 있어서 하나씩 재료나 도구를 빠트리고 오면 급하게 쇼핑몰에 있는 마트에 달려가 구입하기도 하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체할 수 있는 요령도 터득했다. 하지만 성격상 웬만하면 재료 준비에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온 신경은 곤두서 있고 여전히 수업 준비하기 전날 재료 준비를 할 때에는 예민의 극치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또한, 외부 출강 강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내려놓았던 운전대를 다시 잡아야 했다. 운전면허증을 스무 살 무렵 따 놓고 전혀 운전을 하지 않은 채 10년이 지난 후에나 운전연수를 받았는데 임신을 해버렸다. 조심해야 한다는 핑계로 다시 운전대를 놓아 버렸고, 몇 년이 흘러 베이킹 일을 시작하면서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기니 어쩔 수 없이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동안 내가 만드는 베이커리와 홈베이킹 클래스 홍보 차원에서 직접 베이커리를 집까지 배달해드리는 서비스를 한 적이 있다. 초보운전인 내가 동네에서 반경 10km 정도 거리까지 케이크 하나라도 배달을 하러 다녔다. 무슨 치킨도 아니고, 배달비도 안 받고 말이다. 그땐 나의 케이크를 드시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너무 감사해서, 서비스 차원에서 단 하나라도 직접 전달해드리고 싶어서 시작한 이벤트였다.
배달처는 아파트 단지도 있었지만 골목 구불구불한 주택단지도 있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케이크 배달을 다녔다. 아이가 어려서 외출이 어려운 아기 엄마들이 주문하는 케이크나 아이 간식도 배달해드리고, 돌잔치 답례품 쿠키, 결혼 답례품 쿠키세트, 명절 선물용 만주 세트 등 다양한 품목들을 배달해드렸다. 어떤 동네는 사람들을 모아 10명 정도 함께 케이크를 주문하셔서 한 집에 갖다 드린 적도 있었다. 흔들리거나 방지 턱을 세게 넘으면 무너질 수 있는 케이크를 싣고 다녔기에, 늘 안전운전, 서행운전은 필수였으므로, 나의 운전실력은 저절로 안전운전자로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배달로 시작한 운전실력은 외부 출강 강사를 시작하면서 빛을 발했다.
사실 내 베이킹 스튜디오가 있을 때에는 외부 출강 강사를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다. 짐을 들고 다니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귀찮기도 했었으니까. 그러나 시작하기 잘했지 싶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정말 다양한 문화센터에서 다양한 수강생들을 만나고 있으니까.
이곳저곳 출강을 다니며 운전실력은 저절로 늘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서만 운전을 하던 내가 복잡한 서울시내를 운전하기도 했고, 서울을 관통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고속도로를 타는 것도 어렵지 않을 정도로 운전이 편해졌다.
늘 차 트렁크에는 기본적으로 강의를 다니기 위한 준비물들이 존재한다. 바퀴 달린 접이식 캐리어, 키즈베이킹 수업 때 아이들에게 배부할 색연필, 셰프복과 앞치마, 일회용 종이컵이나 용기, 그리고 비상용 장바구니 등. 강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요리, 베이킹 강사들은 최소한 이 정도 짐은 늘 차 안에 싣고 다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외부 출강이 늘게 되면서 필요에 의해 바퀴 달린 접이식 캐리어를 구입했다. 사실 베이킹 강사를 시작할 때부터 이 도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괜한 자존심인지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보따리 강사’ 같은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며 강의를 하러 다니는 강사 활동을 기피했다. 그때에는 내 작업공간, 수업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무겁게 짐을 짊어지고 외부강의를 다녀야 할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외부강의 의뢰들을 여러 번 거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멀리 이사를 하며 공방을 접었고 코로나로 인한 팬더믹이 시작되었으며 나는 강사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여러모로 변한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내 작업공간이 없어도 괜찮은 외부 출강 강사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었다. 마음을 먹기까지 쉽진 않았지만 이미 팬더믹 시기에 절벽으로 내몰린 기분을 제대로 느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숨 쉬고 싶었다. 주위에서는 잠시 쉬어 가는 거라고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서, 하면 즐거워서 시작했고 꾸준히 해왔던 베이킹이 취미에서 일이 되어 한참 능력을 펼치고 있었을 때 걸림돌을 만나서였을까. 갑자기 멈춰서는 상황들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일하고 싶었고, 몸이 고되어도 짐이 많아도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해도 괜찮았다. 나를 따라와 주는 수많은 수강생들을 책임지는 일은 참 좋았다. 잘 맞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와 주심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래서 지금도 베이킹을 시작했던 초심, 그리고 나를 찾아주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 건네주시는 따뜻한 마음들로 뭉클해져 힘들어도 마음을 다잡고 강의 준비를 한다. 모든 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