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하며
남들이 쉬는 주말에도 강의를 나섰다. 주중에도 강의들이 있지만 주말에 잡혀 있는 강의는 어느 정도 수강생 확보가 되는 편이었다. 하루에 두 세 타임도 진행하곤 하는데 거의 만석이고 개강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기에, 강사 입장에서도 주말 강의는 대환영이다. 프리랜서 강사로써는 개강이 확실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훨씬 시간적,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에 쉬는 것을 반납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가족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주말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주 주말마다 강의를 잡아 진행해왔고, 그 덕분에 프리랜서 강사로써의 고정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주말 강의를 나갈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히 짐을 준비한다. 요즘은 새벽 기상을 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주말 새벽시간에 혼자 분주히 움직이는 기분은 뿌듯하다 못해 짜릿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로는 주말에도 이렇게 바득바득 일개미처럼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처량해질 때도 있지만 이내 눈 딱 감고 짐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주말에만 만나는 남편에게 아들 케어를 맡긴 채 집을 나설 수 있는 시간도 가족 각자의 배려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리라면 담을 쌓고 먹기만 좋아했던 남편이 주말에는 아들을 위해 간단한 요리를 하거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추억을 쌓고 있다. 남편의 배려와 커가고 있는 아들 덕분에 엄마가 주말 하루 이틀쯤 없어도 집은 문제가 없었다. 아쉬운 것은 ‘나’ 일뿐.
“여보 돈 많이 벌어와요. 맛있는 거 사 먹게.”
웃으면서 무거운 짐들을 내려 트렁크에 넣어주고 2중 주차된 차들을 밀어주는 남편 덕분에 나는 주말 강의를 처음 잡았을 때의 불안감은 떨쳐버리고 야심 차게 시동을 걸고 도로를 달려 쇼핑몰로 향한다. 남편의 저 한마디에 피식 웃음이 난다. 대기업 회사생활을 20년째 하고 있는 그의 연봉에 비하면 내가 버는 것은 새발의 피 일까.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수준밖에 안 되지만, 그는 늘 나를 이렇게 위트 있게 북돋아 준다. 나도 사회생활을 대기업 회사생활로 시작했기 때문에 만약 그 생활을 지금까지 했었다면 내 연봉은 어느 정도 되었을 테고, 그렇다면...
아, 말을 말자. 베이킹하는 삶을 선택한 이후 그동안, 나는 돈으로도 사지 못할 많은 것들을 경험했으니까.
최근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요일마다 차로 1시간~1시간 반 거리의 강의처에 출강을 했었다. 6년 정도 이 강의처를 나갔는데 중간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거의 2년 반 정도는 왕복 약 3시간을 도로에서 보내야 했다. 한강을 건너 강남에서 강북을 건너 분당에서 일산까지. 일요일 아침, 운전하면서 보이는 한강의 풍광들이 이따금씩 내 눈을 자극한다. 아름답다. 구름과 한강, 몇 개의 다리를 지나가면 나타나는 진입로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가 좋으나 한강을 지나갈 때 묘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동호대교쯤 지나가는 그 길목이 가장 예뻐서, 오후에 돌아올 때에는 강 위에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워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지만 늘 쌩쌩 달리는 강변북로이기에 힐끗 곁눈질로 그 아름다운 풍광을 훔쳐볼 뿐이다.
쇼핑몰에 도착하면 캐리어 위에 대형 장바구니와 박스에 담은 보따리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밴드로 잘 고정한다. 아래층에는 무겁고 모양이 유지되는 짐을 깔고 위에는 가볍고 부서질 소지가 있는 짐이나 냉장 아이스박스 가방을 올린다. 혹시 또 짐이 있다면 삼층까지 올리거나 손에 일부 짐을 든 채 캐리어를 끌며 조심조심 이동한다. 달달달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끌면서 혹시나 짐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천천히 중심을 잘 맞춰가며 짐을 옮겨 쇼핑몰 문화센터 쿠킹스튜디오에 도착한다.
오전 첫 타임 수업이라면 쇼핑몰 오픈전에 입장을 해야 한다. 쇼핑몰 직원들이 출근하고 오픈 준비를 하는 시간대, 직원용 출입구로 진입을 한다.
“아카데미 강사입니다. 문 열어주세요!”
문 앞에서 보안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고 나면 직원용 출입구가 문이 열린다. 사전에 미리 담당자를 통해 직원용 출입문에 가까운 곳에 차를 주차하도록 하는 것도 짐을 나를 때 거리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고, 개인 카트가 부족할 만큼 짐이 많은 날에는 쇼핑몰에 있는 대형 카트를 이용해 짐을 나르기도 하니 어찌 되었든 강사는 바퀴 달린 캐리어 하나쯤은 늘 트렁크에 싣고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
불 꺼진 쇼핑몰 복도. 매장 직원들만이 분주하게 매장 오픈 준비를 하는 바쁜 쇼핑몰. 조용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쿠킹스튜디오에 들어선다.
짐들을 내려놓고 착착 수업 준비에 돌입하는 바쁜 주말 아침.
수강생들을 맞이하기 한 시간 전쯤에 여유롭게 도착해 준비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격이다 보니, 느긋하지 못하고 빠릿빠릿하게 해 놓고 쉬는 편이 낫다는 사람이다 보니, 참으로 분주하지만 어찌 되었든 해낸다. 아니, 하게 된다.
어느새 쇼핑몰 복도에 불이 켜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정면의 전면 유리벽 너머로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보일 때면 수업 준비는 마무리되었다. 강사용 셰프복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뒤돌아서서 나에게 다짐을 한다.
"오늘도 잘해보자!"
그분들과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열심히 준비한 수업들을 마음껏 펼쳐내는 시간들이 참 행복하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나면 일종의 뿌듯함과 해방감을 느낀다.
“오늘 난 참 멋졌어. 오늘 수업 참 매끄러웠어. 나는 참 잘 해냈어.”
혼자서 나에게 칭찬을 해주며 나를 쓰다듬어 주며 주섬주섬 짐을 싣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주말, 나의 하루는 이렇게 분주하게 시작해 강의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에너지를 쓰고 나면 고요하게 라디오를 들으며 한강을 건너 집으로 향한다. 이제는 이 쇼핑몰에 강의를 나가지 않다 보니 주말 아침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운전할 일이 없어졌다. 그때에는 혼자 운전하는 시간이 졸리기도 하고 힘든 순간들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모두 추억이다. 그땐 보이지 않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순간들이 지금에서야 비로소 감사한 순간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요즘도 가끔 주말 강변북로를 달리며 잔잔한 한강의 물빛, 돌아오는 길 한강 위에 비치던 불그스름한 노을이 떠오른다. 아름다웠던 순간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는 장면들이다. 그런 장면들을 만날 수 있었기에 주말 출근을 견딜 수 있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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