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통닭 두 봉지

거정 보고 싶어서...

by 여비

퍼런 슬리퍼를 엉거주춤 끌고서 집을 나섰다. 어머님 방의 전화 수화기를 건네받고 한 칸 밑에 보행기의 바퀴를 밀어 딸애를 건네고서 방문을 닫았다. 고된 일을 마치고 모로 누우신 어머님은 무거운 몸에 억지 섞인 음성으로 " 빨리 다녀와라!" 툭 내뱉으셨다. 스산한 찬 기운이 무거운 맘을 보태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일찍 들어오지 않는 아들에게 화가 나있다. 퇴근하면 곧장 달려와서는 마주 앉아 밥상을 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기다리는 아들 전화가 아니라서 더욱 심술이 나신 걸까? 도련님의 장사가 신통치 않아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온달 통닭집엔 기름진 냄새와 매캐한 담배냄새, 쿰쿰한 술냄새가 나를 반기고 희뿌연한 연기 사이로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 웬일이세요... 큰애가? 거정 보고 싶어서... 말끝을 바삐 채시며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벌써 어디에서 드셨는지 술냄새가 풍겨 나오고 눈빛은 붉고 젖어 있었다. 말수가 적었던 아버지는 술을 마셔야 웃기도 하고 속내도 털어놓으셨다. 이북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얘기며 할아버지가 동네에서 머슴과 함께 글을 가르쳐, 등짐 대신 아버지를 업혀 다니신 얘기, 너른 들판에 새끼줄 다리를 이어놓은 평줄 메기에 엎어져서 다쳤던 얘기도 하셨다.

누우런 종이봉투엔 따뜻한 통닭이 두 마리씩이나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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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게 당부하셨다. 어린 딸만 보고 아무것도 보지 말라고, 시어머님을 엄마로 생각해서 공손하게 시키는 일을 지혜롭게 감당하라고 했다. 당신은 어미를 전쟁통에 건사 못하고 혼자서 남쪽으로 왔다고 하며 선, 눈물을 찍어내신다. 보퉁이 두 개를 이고 녹두빛 강을 건너 종종 대는 식구들을 세었다고...

여기까지 오셨으니 함께 가자고, 귀여운 손녀도 보고 가시라는 내 얘기는 아랑곳 않고 극구 사양하신다. 사돈지간이 어렵고 혼자 계시는 어머님이 가엽고 고마우셔서다. 부족한 딸애를 거둬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하셨다. 귀염 받는 딸처럼, 함박웃음이 끊이지 않게 거둬달라고...

전화통을 붙잡고 망설였을 아버지, 늦은 시간인데, 사돈어른의 초저녁 잠을 깨우는 것은 아닌지, 김서방 하고는 아무 일이 없는지, 함께 산다는 장가 안 간 동생이 있다던데, 빠듯한 살림에 보태주지 못하는 무능력을,

아버지 마음이 되어 쓸쓸히 놓인 술잔에 눈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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