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인생의 피크

by 여비

창가에 햇빛이 거실 중앙에 나앉아 있어도 깨스 레인지에 된장국 냄새가 품 기지 않아도 서둘러 고양이 세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한없이 게으른 주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스스한 두 눈을 비비고 덤벙대기가 천리를 뛰어도 힘이 넘치는 새벽형 일을 해대고 비닐가방, 안의 간식을 공원 벤치에서 걸으며 목에 넘겼다.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 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아먹는다는 영국 속담을 되뇌며...

틈새시간이 아까워 버스 속에서 메모해둔 영어단어를 외우고, 족집게 예상문제를 머릿속으로 주문을 해대듯 빙빙 돌려 풀고, 내가 시험감독이 되어 답안을 작성해보는 롤, 플레이도 했다. 만리장성을 휘도는 하루가 마냥 즐겁고 신바람 났다.

​중위의 표시로 두 개의 다이아몬드를 칼라 깃에 박은 딸의 군복이 사진으로 전송되고 환한 미소가 지구는 둥글다는 명제를 느끼게 한다.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나는 딸의 책상으로 다가섰다. 비행기 모형이 달린 사진첩에 웃고 있는 두 딸이 나를 올려다본다. 검은 손장갑위에 그려져 있는 대한민국 공군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울컥해진 나는 책상 정리를 하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하는 어설픈 불안이 블라인드에 스치는 바람과 하나가 된다. 햇빛처럼 찬란하게 샘물처럼 드맑게 많은 날들만으로 채워지길, 훈련하며 빗속에서 엄마의 열심을 보고 참을 수 있었다는 딸애에게 잘 견디어줘서 고맙다고...

아홉 계단을 뛰어넘은 울 가족 모두에게 뜨거운 마음을 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모모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