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유년의 기억은 엄마의 재봉틀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엄마의 재봉질 소리를 들으면 즐거웠다. 드르륵 털털 대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보리타작의 경쾌한 장단이 떠올랐다. 햇빛이 유난히 따갑던 날, 보랏빛 포도송이같이 주렁주렁 매달린 등나무를 바라보며 재봉틀에 앉은 엄마를 떠올린다. 옛날 그 재봉틀 그대로다. 정갈하게 쌓여 있는 한복일감, 재단가위, 줄자,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온 식구가 방 한 칸에서 잠을 잤다. 귀에 익숙한 재봉틀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들곤 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들 보살피는 일부터 집안의 잔심 부름까지 도맡아야 했다. 고단한 엄마를 더 도와주고 싶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것밖에.
책을 만났다. 우리 집은 장미 덩굴이 울을 넘는 사진속의 멋들어진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당시 수입으로는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못 꾸고 사촌오빠가 받아 보는 학습지를 빌려와 지우개로 답을 지운 다음 다시 채워 넣는 정도였다. 학급 문고에서 빌려온 책들을 몽땅 읽고도 새 책을 사 달라고 할 수 없었다.
풍족하지 못하게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참아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밤잠을 뒤로하고 숙제를 해야만 했다. 부족한 일손을 보태어 동생들을 먹이고 씻겨야했다. 몸은 피곤한데도 이상하게 정신은 맑았다. 나에게 공부란 책을 친구삼아 노는 일이었고 그래서 나는 고독이라는 말의 의미를 일찍부터 알게 된 것 같다.
책만이 거의 유일한 친구였던 그때의 나에게 세상과 폭넓게 소통할 기회가 많을 리 없었다. 버스 종점에 내려 사거리의 공중전화부스를 끼고 돌아 왼쪽에 서 있던 어마어마하게 큰 파란 대문, 그 위 사자 얼굴이 도드라지게 앉아있던 대궐 같은 집처럼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길 같았다.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서, 인숙이가 좋아하는 과외 오빠 얘기를 들을 때, 학교 앞 문방구 진열대의 쫀드기가 먹고 싶어도 옆 눈으로 흘기며 그냥 지나칠 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외로웠다. 심심하거나 배가 고플 적에, 추워서 홑겹의 옷을 여미면서 까만 밤에 빛나는 별을 쳐다보았다. 외로움을 덜어버리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나는 점점 자존심이 강한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엄마의 재봉질은 단순한 취미생활이 아니었다. 우리 식구들 생활 수단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엄마의 외로움은 등이 굽고 허리가 꺾이어도 나와 동생들만은 올곧고 당당하게 자라기를 바랐다. 일거리를 주는 아저씨에게 수고비를 받을 때도 엄마는 말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지 않으셨다. 정교한 재봉 솜씨로, 작업 매무새의 우아함과 성실함으로 대신했다.
선생님의 권유로 나는 도서실의 잡무를 보게 되었다. 나무 의자를 나란하게 둘러앉은 책상위에 책들이 나를 반겼다. 장승처럼 울뚝 선 책장들의 위엄 앞에서 나는 주눅이 들었다. 국민학교 6학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책상, 의자, 책장 그리고 교실 바닥의 빗자루질과 걸레질을 하고 간단한 책 정리가 전부였다. 학급 문고에서 보았던 책들은 책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 할 수 없었다. 도서실을 가득 메운 책은 내 두 눈을 휘둥그레 만들기 충분했다. 4교시가 끝나면 점심을 후딱 먹고 도서실로 청소하러 갔다. 부지런히 몸을 놀리면 방과 후엔 내가 책을 만나 책과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에 부칠 새도 없었다. 즐거운 마음이었다.
책의 다양한 표지는 나의 호기심을 오르게 했다. 흰색 바탕에 굵직한 검은 글자라든지 사각이 아닌 꽃모양으로 형태를 잡은 특별한 신기함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손으로도 만지며 느끼는 맛이 새롭다. 책을 펼치지 않고 상상만으로도 간밤에 꾸었던 꿈이 책 속에 나타날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치고 한 달음에 도서실로 가던 중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도서실에서 일하는 수고로 육성회비는 내지 않아도 된다며 내 손을 잡아 주셨다.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나의 마음이 훈훈해져 학교생활은 더욱 신났다.
그 때부터 책과 함께 하는 나의 생활이 시작된 것 같다. 일상과 책이 따로따로가 아닌 내 몸에 편하게 걸친 옷이라 느꼈다. 따분한 날엔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를, 기분이 좋은 봉급날엔 검정 슈트를 차려입듯 그날그날 여행길에 내 그림자다.
엄마의 재봉질은 한결같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우리 집 형편이 별안간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달라지진 않을 것이었다. 내가 오로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가 바라는 대로 책상에 앉아펜대를 굴리는 어엿한 직장을 가진 여성이 되기 전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비렁뱅이 짓만 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하길 바라고 또 바라셨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비굴해지는 것처럼 치사한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취직을 하여 머리가 굵어지니 난 생각이 많아졌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로 어영부영 시간이 화살같이 달아났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만큼의 숫자를 채우는 영업이란 명패는 자꾸만 나를 초라하게 했다. 그, 일은 순간에 번뜩이는 재치로, 갑자기 행운을 잡는 복잡이도, 출근만 열심히 하는 성실함도 아니란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의 내가 느낀 허탈감은 훗날 만성피로와 소통의 불필요를 끌어 안게되었다.
50대 후반부터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가사를 돌보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남편과 두 딸의 전폭적인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를 위해 버스를 타고 가며 낱말카드를 눈에 익혔다. 바쁜 생활 속에 몸을 돌보야 해서 잰걸음으로 시간을 다투고 숨차게 달렸다. 어깨에 멘 배낭 속 책들의 무게만큼 나의 지식이 두터워 지길 바랬다.
엄마가 자식을 건사하고 교육하기 위해 마음 서리서리 쓴 울음을 삼키며 살아오셨다는 것을 철없던 내가 얼마만큼이나 이해했겠나? 경제력이 부족했던 아버지 또한 어찌 해 볼 수 없는 거라 엄마자신을 다독였을 모진 세월을... 그것은 바람 없는 바다같이 표면상으로는 지극히 조용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이 끊임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바닷속 깊은 곳이었을 게다.
인생이란 마차가 어느덧 종착역을 바라본다. 오전 시간대에 도서관은 나만을 위한 책방이다. 오늘도 나는 네 번째 창가 자리에 앉는다. 바쁘고 무심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30대 이후부터 진정으로 위안 받으며 여태껏 살아왔다. 물론 학창시절 교과서에 나왔던 시와 산문 그리고 소설 등이 생생히 기억나지만, 그건 울림이 없는 학습이었다.
가정을 이룬 후 나는 절실하게 책 속의 지혜를 갈구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대로 이해받기를 바랐다. 그러기에는 내가 세상 이치에 어두워서 엇나가고 헷갈렸다. 이해하지 못할 어리석음으로 마음의 괴로움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책속의 글들을 읽으며 오늘이 힘든 이유를,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깨달음을, 그리고 책 속 저자와 나누는 고요한 대화가 나에게 조금씩 와닿는 것 같다. 아직도 나는 어떤 힘든 시간도 거뜬히 이겨낼 넉넉한 용기를 열심히 찾는 중이다. 엄마의 경쾌했던 재봉틀 소리가 나를 잡아 당긴다. 부지런히 그 어떤 투정이나 불만 없이 드르륵 털털거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