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나란하게 두 줄로 이어진 철뚝길을 뒤로 두고 있었다. 철뚝길을 한 참을 따라가면 펜스로 쳐진 울타리가 있고 그 울타리를 돌아가면 철도국 관사가 있다. 하늘 보다도 더 넓은 관사 마당에는 개구리 알밥 같은 자갈들, 철로를 받쳐주는 침목, 동그마한 모래섬, 너덜거리는 헝겊조각들이 줄 맞춰져 있었다. 고만 고만한 사각형의 궤짝들이 포개져 있었다. 나는 수위 아저씨의 검열도 받지 않고 관사 마당에서 놀곤 했다. 내 친구 경희네 집이 철도국 관사이기 때문이다. 그 당시 경희 아버지는 검정 모자를 쓰고 긴 다리 옆줄엔 금장이 달린 쯔봉을 입고 계셨다. 셔츠 앞에 달린 단추에도 금빛으로 눈이 부셨다.
경희는 외동딸이었다. 학교에 갈 때에도 일하는 언니가 책가방을 학교 앞까지 들어다 주고 점심 도시락도 4교시가 끝나기 바로 전에 가져다주었다. 우린 6학년 4반으로 교문과는 제법 가까운 교실 1층 그것도 실내화로 막 갈아 신을 수 있는 출입구 옆이었다. 경희네 집에서 일하는 언니는 언제나 바빴다. 집안 소지, 마당 쓸기, 장보기로 일을 맞추고는 오후엔 공민학교엘 가야 했기 때문이다. 분주한 시간 중에도 경희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야만 했는데 발걸음을 재촉하고도 늘 시간에 쫓기었다. 때때로 내손에 의해 전해진 경희 도시락은 경희네 엄마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경희와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학교가 일찍 파하는 날에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경희 집으로 쏜살같이 뛰어갔다. 집으로 가본들 줄줄이 울어대는 동생들과 할머니의 잔소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퇴근시간에 맞춰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경희네 집은 대청마루가 유난히 넓었다. 사방에 둘려 쳐진 수석들이 경희 아버지의 무거운 몸집처럼 앉아있었다. 피아노 한편엔 커다란 녹음기가 안테나를 뽑고 두 개의 단추가 불뚝 솟아있었다. 우리 집에 없는 녹음기는 경희네 집에 있는 두 가지중 하나다. 없는 것 중 다른 하나는 엄마다. 나는 엄마가 없는 것은 속상하지 않은데 녹음기가 없는 것은 진짜로 화가 나고 갖고 싶다.
우리 둘은 무엇이든지 함께하고 어디든 같이 다녔다. 심지어 학교 화장실도 같이 들어갔다. 우리는 내게 없는 엄마가 경희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경희 아버지는 새엄마와 사셨다. 경희는 내게 말했다.
"새엄마하고 사는 게 더 안 좋아. 너처럼 할머니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좋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씩 웃었다. 내 밑으로 생긴 동생들은 웃는 내 마음을 알까? 할머니의 우격다짐으로 내가 씩씩하게 보여야 하고 듬직한 큰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달아드릴 왼쪽가슴을 더듬대고
히죽거리며 웃어도 헛배가 아닌 진짜 웃음 끝에 허전함을
아침부터 천정이 들썩거리는 지청구가 못 부르는 합창 속에 삑사리여도 둥그런 원안에 마주 앉은
우리 집의 그림일기장 속
우리 가족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