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한편에 접시꽃이 서로 키재기 하듯 쭈욱 고개를 빼고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결에 서로 다투고 해를 받는다.
내 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세상의 계절도 이맘때 은행잎의 치자 빛이 익어가고 스산한 바람결에 코트 깃을 여민다. 가을 한낮에 따가운 태양도 한시엔 치열했지만 나는 중심에서 멀어진 서늘한 저녁으로 가고 있다.
학창 시절 수업이 끝나면 이제부터 더욱 신나는 시간이다. 학교 앞 떡볶이집에 삼삼오오 모여 먹는 어묵, 꼬마김밥, 군만두와 튀김을 손 쉴사이 없이 입으로 몰아넣었다. 분식집이 떠나갈 듯이 이어지는 끝도 없는 수다와 터질듯한 혈기, 그리고 막연하지만 하늘로 쏟아질 것 같던 꿈들을 발사했다.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홍차 색 노을빛에 하늘을 가슴에 담았다.
아직은 몇 시간이 남은 해 저물기 전의 나의 시간이 그저 고맙고, 가을걷이 끝자락에 떨어진 이삭 줍는 시간이 소중하다. 한 번은 허락하실 이 전의 빨간 태양을 고대하는 나는, 믿음 안에 머문다. 치열했던 열두 시에서의 그때엔, 앞으로 내달리려 숨을 참았다. 내몰리는 들숨과 날숨도 고르지 못했다.
이제 머지않아 겨울이 올 것이다. 꽁꽁 언 얼음이 녹아내리고 서리발에 휘둘리어 창문을 꼭 닫아도 어느 틈에 봄기운 닮은 홀홀한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황혼빛을 닮은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산책을 갈 것이다. 지난봄에 잠시 머문 제비꽃의 보라색을 기억하고, 여름엔 빨간 글라디올러스와 봉선화를, 가을에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에 손을 잡고, 겨울에는 매화꽃향기와 하얀 목련을 맞이 할 것이다. 저절로 지나가는 것 같아도 자연 속에 지켜져야 할 순리와 도리가 있다. 내게도 이것들을 지켜야겠다는 나와의 다짐했던 많은 시간들은 참으로
힘겨웠다. 꽃과 자연이 알고 있으니 하늘이 내게 손을 들어 그렇게 그렇게 해 줄 것이다. 아직도, 지금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 시를 사이에 둔 내 생애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