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긴 너무 힘들어..
내 기억으로는 여중 3년이었을 것이다. 체육 선생님은 남자분이었다. 복장 검사를 담당하셨다. 당시엔 교복자율화가 안된 시절이라 감색의 A라인 스커트 위에 흰색 블라우스였다. 무개성의 획일적인 일제 잔재가 묻은 그냥의 옷이었다.
군인의 제복을 연상케 한 통일된 학칙에 따라 일정한 마네킹 감이었다.
옷에는 겉옷과 속옷이 한 쌍을 이루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입이 짧은 나는 성장발육이 늦되는 아이였다. 나의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두렵기까지 하다. 무슨 복장 검사를 한다는 것인가? 흰 블라우스 중앙에 레슬링 선수인 역도산이 허리에 채운 챔피언 벨트를 끼우듯이 딱딱한 브래지어가 채워져 있어야 한다. 늦되는 아이였던 내 몸엔 젖 망울이 돋아 오르지 않아 철갑 모양을 한 가짜 브래지어를 하려니 난감하기만 하다. 지방덩어리도 없고 빼빼 마른 겉가죽에 풀 바른 것처럼 붙여진 브래지어는 손을 위로 올리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에 매이고 양 팔을 뻗을라치면 목 밑의 쇄골에 둘려있는 두 끈이 하늘로 들려진다. 또한, 등짝을 후려치는 체육선생님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민망한 맘과 함께 훅 올라오는 모멸감이란 정말이지 이 짓을 더 이상은 못 참겠어서 흰자위 눈을 뒤집고 싶다.
국장의 비서 시절엔 한창 신맛이 들어 명동의 **부띠크를 돌아쳤다. 타 부서의 여직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은 왠지 촌스럽고 무시된 눈초리가 마뜩지 않았다. 달라 보이고 싶었다. 난 국장님 비서였으니깐!..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잘난 척이 하고 싶고 특히나 사내연애를 하는 미스 김언니보다 우뚝 치솟아 남자사원에게 나를 튀어 보이고 싶은 거다. 취향과 유명 브랜드를 적절하게 배려한 센스 넘치는 패션감각을 보이려고 말이다.
패션의 완성은 속옷이라 했던가? 타이트하게 조인 허리선을 의식하고 볼륨 있는 가슴을 우아하게 치솟게 하려고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뽕브라가 그것이다. 착용이란 말에서 느끼듯 생물학적으로는 가학의 심정이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조이든, 붙이든, 채우든지 간에 '조르지오 아르마니'도 넘보지 못하는 나의 멋진 몸매를 위해서라면 그, 무슨 짓은 못하겠는가..
세월이 가면 몸도 마음도 느슨해지나보다. 나는 이 갑갑한 몰골도 우아하지도 않은 이것을 벗어 버리고 싶다. 나이가 익어가며 얇아진 피부는 가렵기까지 하고 건조해 푸석대니 아주 죽을 맛이다. 거기에 더운 여름날엔 어떤가?.. 땀으로 축축해져 불쾌한 냄새로 이어지는 이, 불편한 처사를 말이다. 누가? 이, 기이한 물건을 만들어 가슴에 완장을 채우는가?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고 벗고 싶으면 벗는 것이지 남의눈을 의식해 허리를 펴지 못하고 쪼그릴 이유는 없다고..
외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자물통을 철컥 소리와 함께 열듯이 가슴도 시원히 열겠다. 누가 뭐라 할 것인가?
이제 서늘한 바람도 한 껏 몸속으로 들어오는 계절! 조여야 할 완장을 벗어버리고 선선한 원통의 속옷으로 느슨하게 편히 쉬어야겠다. 자연스럽게 벗어 버리고 자유로이 말이다. 억지스러운 내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