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수

내친구 혜수

by 여비

혜수를 다시 본건 명동의 코스모스백화점 앞이었다. 노랑머리에 짙은색 아이방을 낀 남자곁에 팔짱을 낀 모습이 분명 그애였다. 긴 생머리가 멋스러웠다. 얼핏 눈을 마주치고 난, 피싯웃음도 이티처럼 방긋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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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수와 난 같은 반이었다. 우리반에서 제일 키가 컸고 어른스러움도 풍겼다. 선생님의 지시에 맨 뒷줄 책상을 혼자 차지했던 혜수.

반장이었던 나는 엎드려서 잠을 자는 그애를 깨워야만 했었는데 귀찮고 하기싫은 일중에 하나였다. 키가 작았던 나는 마음도 작아, 그당시 날라리인 혜수가 부담됐다.

우리집에 놀러 갈래?

혜수는 내게 다가와 배시시 웃었다. 멀찍이서만 바라봤던 그애는 날라리의 주홍글씨를,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받고도 언제나 뻔뻔했다. 교무실을 들락거리고 수업시간에 잦은 조퇴를 하고 땋은머리를 풀어헤치고서 등교를 하던 그랬던 그애가 자기집에 놀러가잔다.

막내고모와 둘이 살았던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그애 집을 들락거렸다. 을지로의 인쇄소골목에서 다방을 하던 그애엄마는 늦게까지 집을 비우기가 일쑤였다. 방바닥에 뒹굴대고 읽던 소설책은 머리맡에 베개처럼 살갑게 다가와 방황했던 시간들을 충만하게 했으며 끝도 없는 수다에 소재들이었다.

늦은 귀가는 잦은 거짓말로 이어졌다. 혜수와는 더 이상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서로 아는척을 하지말라는 막내고모의 명령은 어길수 없는 규칙이 되었다. 나는 다시는 혜수네는 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혜수는 이가 빠진 동그라미처럼 학교엘 왔다. 교실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쳐도 모른 척했다. 서늘한 공기처럼 쌩하게 지나치기도 했다. 누가 뭐라 하든간에 풀어 헤친 그애의 머리카락을 귀밑으로 단정하게 꼽아주며 커다란 두 눈이 별처럼 빛난다고 속삭이던 내가 이토록 싸늘한 애가 되었다.

전학을 갔다는 혜수를 한참이나 지난 이후에 이제 와 새삼 혜수가 싫어서가 아니었다고, 부디 외로워 하지말고 짙은 아이방을 낀, 그 남자곁에 꼭 붙어 잘 살아야 한다고.....

우리 집에 놀러 갈래?... 해 줘서~ 먼저 말 걸어주고 끝도 없는 허황한 꿈들을 떠들어 댄, 그 시간 속으로 달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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