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만 뻥긋해도 됩니다
열정이 낳은 고음이탈의 임시방안
교실의 두 개의 음성은 개구리가 우는 것 같다. 깜깜한 논둑길을 걸을 때 나는 그 소리다. 여기저기서 웅웅대는 집 잃은 강아지처럼 허공을 날아간다.
한 참을 돌아 살아 나온 선배님들의 목소리는 신음을 아랫목 삼아 걸쭉하다. 물론 꾀꼬리가 울고도 갈 한 선배님도 있다. 세월의 무게만큼 듬직한 알토의 저음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자, 그만 여기 보시고 한 번 맞추어 볼게요. 반 박자 쉬고 들어가는 것 잊으시면 안 되고요"
선생님의 지휘를 보고 피아노 전주소리에 귀, 쫑긋 하며 첫 소절을 시작했다. 얼마 만에 불러보는 합창인가!
가정의 달 5월에는 교회 행사로 가족 찬양대회를 한다. 모태신앙인 나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 바람이었다. 교회 생활에 참여하고 싶어 남편을 설득했다. 들어보지도 못한 찬송가를 부른다고? 흘러간 가요도 못 부르는데 하며 남편은 볼멘소리를 한다. 가족 4명 참가라고 했다고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나의 반강제에 못 이겨 녹음기를 틀어놓고 연습을 했다. 마음만 바빴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어설프기만 하다고 해 계속 듣기만을 했다. 여자파트는 익숙하게 되는 것 같아 곡조보다는 가사에 힘을 실어 보기로 했다. 저음인 남편의 음성은 그대로 하고 고음에서는 입만 뻥긋하기로 합의했다. 위기를 기회로 넘긴 탓에 특별상을 받고 박수갈채 속에 가족 찬양대회를 맞췄다.
4월 중의 개관행사에 합창을 한다. 겨우 8번 수업에 우리들 모두는 힘차게 부를 뿐 각각 자기 소리 내기에 급급하다. 합하여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는 것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이다. 전공을 한 것도 나이가 젊은것도 단지 해보겠단 열정 하나만 있다. 살아온 날들의 회한이 마음을 뛰어다니고 발음도 정, 만큼이나 넘쳐흐른다. 내 살아온 시간들의 무게를 실어본다. 곡조를 넘어 입만 뻥긋 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