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매 순간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가족들에게든, 밖에서 만난 인연이든 말이다. 그들에게 언제나 열정을 가지고 시간을 보냈던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
전에는 잘 몰랐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삶의 유한함을 느끼며 시간이 아깝단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사람은 평생 사는 게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기회가 소중했다. 늦은 공부로 사이버대학을 다닐 때는 더욱 그랬다. 허송세월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는 시간을 최대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계속 새로운 환경에서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순간순간을 그냥 보내기 싫었다. 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새로운 배움으로 흥미를 잃지 않아 마음부자가 되고 싶어서다. 글쓰기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후회 없는 시간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성장해 가는 나를 보는 기쁨으로 식구들과 남편에게 선한 영향력까지 끼치니 여러 모양으로 고맙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후회 없는 삶에 대한 기준도 다를 것이다. 물론 허술하게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삶이, 최선을 다하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다. 나에게 최고의 삶을 선물하다 보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주지 않을까.
시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며 이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내가 그 기억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도 있지만, 잊지 못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너나 할 거 없이 한 번 왔다 한 번 간다. 삶이라는 게 다 그렇다. 죽음에 대한 기억은 삶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한다.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구나. 나는 시간을 먹어 치우는 로봇인가 보다. 작년 이즈음 전부터 시어머님은 서서히 나에게 죽음에 관해 종종 이야기를 했었다. 무심히 넘겨버리고 일상을 하던 대로 보냈었다. 정응천의 하늘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다녔었던 길, 시장통에서 찹쌀 순대와 꽈배기를 한 손에 사들고 다른 한 손에는 녹차가루로 덧입힌 카스텔라를 들고 종종 대어 걷던 길, 건너편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시는 시어머님의 커다랗고 둥근 맘을 안고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던 길, 인공의 조경들 사이로 졸졸거리는 시냇물에는 천둥오리 두 마리가 나를 맞는 것처럼 울퉁 절퉁 앞뒤를 따른다. (…..)
한 때 시어머님의 우렁찼던 음성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 구절은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의 말귀에서, 맛난 음식 앞에서 우리의 지난날들에게 모두 감사하신다는 그 말에, 그리고 숱한 상처로 눈물 떨구며 한 자 씩 글쓰기노트에 적고 얼굴을 묻고 잠들던 단칸방에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도 내게 아주 가끔씩 꿈에 보이는 시어머님이 언제나 함께하고 내 고독을 채워준다.> - 여비 브런치 ‘혼자 걷는 길은 없다’ 중 발췌-
교회에 앉아서도 그날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자. 내가 세운 규칙 속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끝을 기약하자. 하고 말이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 요령 피우지 않는 사람.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