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by 여비

연탄광 옆에 아버지의 보물 1호인 자전거가 늠름하게 앉아있다. 망원경의 렌즈보다 더 멀리 달릴 것 같은 커다란 두 바퀴를 이고 선 안장엔 굵은 매듭이 질서 있게 감겨있다. 낡은 가죽 가방을 감고말이다. 가방 안에는 접힌 모형자, 스탬프 그리고 나무로 만든 회초리가 들어있다.

나의 아버지는 선생님이다. 학교에 갈 때면 친구들과 책가방을 들고 교문을 들어간다. 교장선생님과 생활주임 선생님들의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운동장을 누비고서 씩씩하게 교실로 향한다. 부지런한 아버지는 벌써 학교 꽃밭에 얌전하게 앉아있는 풀과 꽃잎에 물을 주고 토끼장에 먹이도 가져다 놓으시고 분주하게 돌아치신다. 할 일이 많으셨던 아버지는 아침밥을 거르시고 이른 새벽부터 일을 하셨는데 특히나 운동장을 삥 둘러친 포플러 나뭇잎을 한 잎도 없이 쓸고 돌을 고르는 것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당시의 운동장 사정은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체육시간에 다치는 학생이 없도록 하는 일에 소홀할 수 없었나 보다. 음악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따로 담임을 맡지는 않았다. 담임선생님들의 교직생활과 다르고 수업 외에 시간이 많다 보니 아마도 일상적인 일도 맡아하였던 것 같다. 못이 튀어나온 책상 귀퉁이, 비뚤어진 걸상 다리, 낡은 칠판의 먹칠 등 목공 통에 망치와 아버지의 손은 쉴 새 없이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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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금소리가 또렷이 들리게 아버지는 힘차게 페달을 굴리고 우리는 각자의 음색대로 노래를 부른다. 저마다의 훌륭한 소리는 귀를 거스르고 불편한 마음이 되었는데 손짓으로 제지하고 당신이 부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라 할 것도 없이 고요 속에 들리는 천상의 노래에 적신 마음이 되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허름한 국방색 바지를 입고 손에는 망치를, 낡은 모자 위로 얹힌 사다리에 둘리운 몸뚱이가 보이면 저만치로 도망을 다녔었다. 나는 줄곧 아무에게도 아버지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허투루 보일까 봐서 학교에서의 내 모습에 흠집이 날까 봐서 말이다. 눈치 없이 아버지가 나를 아는 체 할까 봐 마음이 졸였다. 영숙이 엄마가 고운 한복을 입고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왔던 날에 우리 반 친구들에 까만 눈을 보았던 날 그날에 부러움을 나도 만져보고 싶어서였나? 아니면 검정 양복을 말쑥하게 빼입은 담임을 맡은 선생님이 아닌 그냥의 음악 선생님인 것이 었나? 어른들의 관심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관심 쟁이라서?

아버지는 처음엔 독자가 아니었다. 6.25 전쟁통에 위로 넷이 전사하여 졸지에 누이가 둘을 위로 두고 3번이지만 큰아들이 됐다. 할머니는 아들을 또 잃어버릴까 두려워 군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뭐든 다 들어주고 할 수 있는 것도 밀어주어 일본에 유학을 하셨다. 많이 배웠으니 권력도 많은 자리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치고 소사겸,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이었다. 둥글지 못한 세상살이로 자식 셋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많은 도움으로 나와 동생들은 어미 없이 새엄마의 차별도 견딜만했다. 이런 일상으로 나는 외로만 보이는 내 아버지와는 거리가 많았다. 요즘처럼 소통 없는 그냥의 아버지였다.

깊은 밤, 벌레 우는 밤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호된 갱년기를 보내서 인가? 때 없이 스산한 바람결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니 인생사는 것에 하나씩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 생긴다. 그, 때의 내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최선이었다는 걸 말이다. 한 파로 온 대지가 꽁꽁 얼어붙었던 날에 아버지는 언 손에 호떡 봉지를 쥐어주셨다. 따뜻한 품속에서 꺼내 건네쥔 그 호떡의 주름진 두 손을 나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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