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by 여비

분가를 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산 세월만큼 정도 많이 들어 산꼭대기만큼이나 서운했다. 방과 부엌을 사이에 둔 옆방과의 간격 구분도 없이 올망 종말 그랬다. 4가구가 돌면서 설거지와 빨래도 순번을 정하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사용하다 보니 아귀다툼도 다반사였다. 안집인 주인집에 시어머님은 그야말로 골목대장으로 목소리가 쩌렁거리고 마당 가운데 고기불판도 빌어다 쓰곤 했다.

아파트로 이사오니 울도 담도 없이 살던 때는 저만치다. 낯선 사람들의 무관심을 필두로 나는 그만 주눅이 든다. **꼭대기의 시어머니 그 집의 촌티스런 풍습과의 이별이 아쉽기만 하다. 생전에 엘리베이터를 타보지 않아 낯선 공간은 더욱 어색하고 젊은 엄마와 애기를 만나기라도 하면 짐짓 목소리를 높여 " 아구 예, 예쁘게도 생겼네 몇 살이지?" 하며 오버를 한다. 젊은 엄마는 "할머니께 인사드려야지?" 한다.

"할머니" 라니 말도 안 돼. 젊은것들이 무슨, 제대로 볼 줄도 모르고 말버릇도 엉망이잖아. 하며 속으로 분개를 한다.

큰애반 학급 엄마가 아래층에 살고 두 아들을 둔 희재 엄마를 알게 됐다. 호수 같은 맑은 눈을 가진 말쑥한 그 엄마는 인사도 깍듯 이하고 유순해 보여 나는 좋은 마음으로 대했다. 곧잘 알뜰장에서도 만나 말수도 텄다.

아는 윗집 언니 말에 희재 엄마가 시름 거려 아파 병원을 들락거린다고, 큰 병원에 실려가 암 진단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다리가 후 둘 대며 젊은데 암에 걸렸다니 인정사정없는 것이 병이라지만 어찌 세상살이가 매몰차단가 말이다. 나의 고뿔, 안 걸림이 배가 안 아픔이 그만 염치없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적어도 무병장수의 피켓을 잘라 반이라도 주고만 싶었다. 후에 첫 손자가 장가드는 것까지 보고 싶다는 나의 과욕이 넘쳐남에 부끄러워 얼굴이 달고 살고자 하는 목숨줄에의 집착을 설기 놓고만 싶었다. 해맑은 희재 엄마는 고만 고만한 무욕을 일부러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해보고 생이란 참말 얄궂은 장난 같기만 했다.

큰애가 고2인 희재 엄마는 "대학만 맞추면 더는 안 바래요" 하며 실눈을 째고 울음을 삼켰다. 병실에 크레졸, 소독약 냄새가 내 눈을 껌벅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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