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7월이 되면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무더운 여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오이지처럼 깡마르고 길쭉한 여자 아이.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얼마 전 시골 어느 이름 모를 동네에서 전학을 왔다. 이름은 공영미, 쪽 째진 뱁새눈에 검정숯 탄을 바른 검은 피부, 골이진 골판지보다 홀칙이 된 두 다리가 엉성했다. 모두들 키득키득 삐죽 대며 웃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기침소리로 우리들은 웃음을 멈추고 짝지가 없던 내 자리로 앉게 됐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진 촌뜨기 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안녕, 반갑다." 쌩한 기분도 잠시 착 감기는 말투다. 숫기가 없는 나는 영미와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고 반 친구들은 재미있는 친구가 하필 내 짝지가 된 것을 불쌍하다고 위로를 해댔다. 남자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영미는 깜장 숯 탄, 구공탄, 깜상, 말랑 깽이 하며 별명을 지어 수시로 괴롭혔다. 그러나 영미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오히려 관심으로 웃고 넘겼다. 새로 온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 같고 더는 친구들도 괴롭히는 일은 없어졌다.
하굣길은 버스종점이 있고 검은 메탄을 쌓아두는 공터가 있다. 그날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가게 됐다. 집에 빨리 가려고 공터를 가로질러 갈 때였다. 마침 엄마의 심부름을 나온 영미를 만났다. 으슥하고 어둠으로 휑한 길은 무서움과 누군가 따라오는 느낌으로 우리는 뜀박질을 했다. 불행히도 그 느낌은 진짜였고 따라오는 사람은 셋이었다. 산동네 불량배인 것 같았다. 영미는 길쭉이고 깡말라 잽싸게 빨랐지만 내 다리는 땅 밑으로 붙들려 있는 것인지 매양 그, 자리이다. 영미는 어디에서 힘이 나오는지 내 팔을 감 야채 더니 감색에 대문의 벨을 누르고 "엄마! 문 열어 줘! 아빠! 누가 따라와! 빨리 문 열어 줘!" 하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쫓아오던 불량배들은 멈칫거리다가 반대쪽으로 물러났다. 무섭고 긴장으로 애가 탔다. 다시 다급하게 영미는 소리를 질렀다.
정말 다행이었다. 영미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고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다. 우린 이 사건으로 절친이 되었다. 숙제도, 시험공부도, 공주 머리가 노란 색칠공부도 함께했다. 그러나 영미는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전학을 갔다. 몇 년간은 연락도 하고 지냈지만 세월 흐르듯 흐지부지 끊어졌다.
잊지 못할 나의 친구 영미야. 들리는 소리엔 세탁공장에 취직해서 반장이 되었다지? 우리가 같이 있을 때 한 하늘을 이불 덮는 거라고 했는데 포근한 이불속 같은 너는 어디 있는 거니? 그립다.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 영미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순수한 웃음으로 인사해야지.
"안녕, 반가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