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부터 2층, 그리고 3층짜리 창고형 단독주택이다. 우여곡절 많았던 여러 달이 지나고 땅을 골랐다. 우선 1층엔 남편의 갤러리로 음향기기가 들어앉을 거다.
내 자리는 구분 없는 자리로 아무 데나이고 주방 끝에 간이 책장을 두고 향한 창문을 닫기도 빙, 에둘러 다니고 내 공간은 소유할 수가 없었다. 2층 한 폭에 침실이고 나머지 두방은 남편과 내가 각각 사용한다. 학창 시절에 동생과 함께 회색 줄무늬를 나란하게 두고 앉은뱅이 방석을 서로 차지하려 애썼다. 욕심쟁이 동생에게 언제나 양보를 하고 전기불도 9시면 꺼야 했다.
함께 엉겨 붙어 내 자리의 개념은 없었다.
집의 선과 면 그리고 입체감, 질감, 색상, 조명등 모든 것에 내 의미가 부여되고 공간을 소유하다니 마치 커다란 도화지에 그림 같은 집을 머리에 넣은 것 만 같았다.
엄마인 나는 읽는 사람이었다. 박경리의 토지를 최명희의 혼불, 모파상과 솔제니친 그리고 톨스토이를 사랑했다. 문학소녀를 거쳐 공포와 사회소설작을 흥미 있어하고 특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 충격을 곱씹었다. 열악한 환경과 쫓기는 시간은 방해가 안되고 심지어 떨어져 나간 욕조 바닥을 뒤집어 놓고 책을 보다가 시어머니의 성깔 돋은 지청구도 들었다. 방충망을 사이에 두고 혼자만의 장소를 찾았다. 식구라는 공동체 구성원들 안에 나의 위치와 나의 자리는 인격의 대접을 말한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말이다.
읽고 쓰는 것은 고독을 필요로 한다!
그, 고독은 장소여야만 하고 채광이 있어야 하고 혼자의 시간이 있어야 했다. 시간은 빨리도 가고 이제야 나만을 볼 수 있는 내 방이 생겼다. 그것은 나를 부르는 타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 부엌에서의 가사를 멈추는 방, 고요 속으로 몰입하고 침잠할 수 있는 방, 내가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 그리고 "쓰기"로 생각을 풀어내는 방이다.
돌아보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추억 속에서 되새겨보기, 아픈 상처, 분노, 슬픔, 상실을 쓰다듬기, 그곳의 놀이터에 모두 풀어 버려 나 자신을 해석할 것이다.
내 삶을 온전하게 사유하고 싶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