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와 백일홍

by 여비

여름 한낮에 아기 조막손같이 귀여운 채송화는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조롱 조롱한 마당의 한켠에 엎드린 흰색 런닝과 노랑, 빨강의 수채화 물감을 풀어 그림을 그린다. 어릴 적 아버지가 밤이 늦도록 술을 드시고 일찍 기침하며 마당을 만나고 지난 밤의 소란은 모두 잊혔다.

태양의 발광을 받으면 시드는 연약한 채송화처럼 아버지의 술병도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학교에서 쫒겨나던 날 " 채송화의 짧은 생명을 많이도 닮았다." 하신 할머니가 그립다.

권태와 나른함으로 몸을 적신 아버지는 담벼락에 심어놓은 채송화를 친구삼아 햇빛을 쏘인다. 기나긴 침묵으로 옷을 입고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꽃송이를 바라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한 날이다.

백일홍은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백일초라고도 한다. 떠나간 님을 그리워 해 한켜씩 떨어져 부서진다.

붉은 입술로 치장하고 살래 살래 고개를 흔들면 바람이 길을 묻고 한송이 떨기마다 쓸쓸한 내 마음을 다독인다.

작년 가을에 받아놓은 일년초씨를 갈무리해 한 해 동안의 기다림을 적어둔다. 무시로 잊은듯이 추운겨울 지나 작고도 여린것들 속에 시작과 끝이 간다. 우주가 영원하다.

나는 시집속에 백일홍 씨앗봉지를 숨겨두었다. 아득히 잊었다. "지워야 할 어젯밤의 누구런가?" 입속으로 되네이며 순박한 미소도 지워본다.

그 여름 내내 찬란히 꽃잔치로 축제를 벌였던 만큼 만개한 꽃자리가 휑하다. 오랬동안 느리게도 핀 백일홍은 백일동안 피어 질때도 느릿 느릿 사그러진다. 무너진 결실이 애타하는 나는 흩어진 기억들을 잡으려 안간힘을 써 보고 이내 수그러 들 뿐, 눈위에 앉은 백일홍을 맞는다. 멀리 떠난 님이 마냥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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