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 카드

by 여비

훅 불어오는 찬 바람이 온몸에 끼얹고 따스한 밥 한 끼가 그리워 투닥대며 부엌 달린 쪽마루로 종종 댄다.

터진 이불 틈새로 빠져나온 듯한 구름이 빨갛게 물들여가는 저녁노을이 해와 노니는데 유유자적은 저, 먼 나라로 도망을 갔다.

남편이 하던 일이 폭망 하고 빚은 덤으로 떠안아 이사를 왔다. 새댁의 나는 어린것을 등에 업고 먹고사는 생업도 어깨에 업었다. 이사를 온 다세대주택 안에 형편들은 모두 헙수룩해 어두운 반지하의 빛처럼 음산했다. 쪽 고른 유리 현관문 위에는 1,2,3,4,5, 번호가 적혀있다.

내 집을 사이에 두고 왼쪽 1호는 소희네로 부부가 세탁소를 하고 오른쪽 3호 성근네는 아저씨는 경비로 아주머니는 파출부이고 맨 끝에 수도 간을 보고 있는 영수네는 4호로 시내에서 잡화점을 한다. 새댁으로 불리는 2호인 나는 남편이 야방을 맡아 이곳으로 기, 들어와 새댁 1년 차다.

졸지에 공부방 선생님이 된 나는 줄줄이 꿴 옆집들의 이웃애들 숙제와 한글, 산수 그리고 때때로 동화구연도 가르친다. 그야말로 만물박사 되겠다. 이, 말은 남편의 반조 롱으로 꼬인 맘보에 반사회적인 언행이다.

청년부 시절부터 교회의 반사를 맡아 봉사해온 나는 이곳에 교회에서 유치부를 맡아 봉사하다 먹물이 묻혔다는 이유로 두 칸의 방에 개 딱지만 한 칠판을 걸었다. 등에 업혀온 딸애는 1호 집 소희 집사님이 큰엄마가 되어 세탁소로 일찍 헌이 젖병 보따리와 가버리고 나는 8절지 캔버스만 한 켄트지와 씨름 중이다. 꼼꼼하고 섬세한 나는 나만의 독창적인 "낱말 카드"를 제작해 한글 첫걸음 떼는데 일조했다. 야방의 일자리를 맡은 남편은 시간이 허락하면 곧잘 도움을 주는 보조 선생이었다. 그림 그리기와 손재주가 좋아 애기들의 산만한 눈을 집중시키는 센스가 있었던 것 같다. 빛깔 좋은 인공의 수채화 색이 아닌 먹물 펜으로 낙엽 태운 가루로 멋진 "낱말 카드" 작품을 만들어 주었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모여 낱말이 되듯이 남편과 나도 조합을 이루어 애기들은 날로 불어났다. 입소문이 타 동네 신축부지 신북초등학교 앞에서도 학생들이 오고 교회에서는 아예 교회 부설을 하자고까지 난리였다.

밤과 낮 구분 없이 열정을 가지고 애기들을 가르쳤다. 온 교회의 성도나 집사님들의 따뜻한 격려 그리고 남편의 외조도 감사하며 행복했다. 이를 계기로 나는 시간을 쪼개어 방송통신대학 영문과도 졸업을 하고 이, "낱말 카드"를 제목으로 한 사연을 **방송국에 보냈다. 물론 방송이 채택되어 주, 장원의 행운도 잡았다. 젊어서 열정과 기회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한다.

이제와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해도 소희 큰엄마와 성근 엄마, 수근이 등 등 이 모여 살던 고덕지구의 낙엽송 우거진 산골마을 두 칸 쪽방 공부방은 사람 사는 정으로 물씬해 애기들과 "낱말 카드"를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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