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대의 비 오는

by 여비

나는 기차로 남편과 여행을 가는 중이다. 흐르는 세월 덕에 편할때로 편해져 목 늘어난 티셔츠만으로 입성을 채운 내 나이 오십하고도 여덟이다. 바쁘게 달려온 시간은 무게로 무끈하고 뻣뻣한 성정으로 우린 덤덤한 일상들을 보냈다.딸애의 재롱은 울 부부를 기차에 오르게 했다.

어깨를 나란하게 앉은 자리엔 싱그럽고 푸른 혈기는 볼수 없었다. 어느덧 특별할 것도 없는 무덤덤이 켜켜이 쌓여 털어내기엔 어색하고 버겁다. 기차 안의 무거운 공기는 나의 마음을 비오는 날에 차분함에 살짜기 내려온 쓸쓸함을 부르고 시간의 궤적까지 진저리가 쳐진다. 경주역을 빠져 나온 나는 도로위를 내달려 간간히 내리는 빗소리를 방울 방울 받는다.

시골에 내리는 비는 도시에 내리는 비와 그 풍취가 전연 다르다. 빗속에 바라보는 봄의 농촌은 싱그럽고 산뜻하고 흥겨워 보였다. 물을 흠뻑 먹은 땅이 검고 부드럽게 보이는 들판으로 도랑물이 흐르는 게 가을 들판 못지않게 풍요롭게 보였다. 그야말로 단비로구나 싶었다. 들과 풀과 나무와 배꽃, 복숭아꽃이 다디달게 목을 축이고 무럭 무럭 자라는 게 보이는 듯했다.

나는 내게 살며시 속삭인다. 저기 저 너른 들판으로 빗물이 떨어져 개골창물이 모이듯 너의 열심과 물욕,아집, 위선을 이제는 평화의 바다로 던져 버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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