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by 여비

오늘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도 조간신문도 한 줄 읽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고 나 또한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 비도 오지 않았고 눈도 오지 않았으며 심지어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든 무력감에 나는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방 안에 누워 오전 오후를 보냈다. 식욕도 도망가 억지로 한 술 뜨고 난 뒤에 다시 누웠다. 평소와 다름없이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몇 번 되넘기고 나서 마지막엔 화장실 변기에 게워 내고 말았다.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무시로 잠이 들었다.

선 잠속에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도 무사히 지나가는 일상은 여전히 멍하다. 멍한 일상이 이렇다 할 무이로 또 무사였기에 깨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두서없이 엉켜버린, 그 망할 놈의 꿈에서 깰 수 없다는 것만이 꿈속에서 겪은 유일한 꿈같은 일이었다. 온몸은 식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젖은 몸을 털어내려 내 몸뚱이를 흔들어 대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은 머리를 부여 잡았다.

'아니야, 이렇게 사는것은 아니지.'

억지로 몸을 추슬러 옷을 꿰고 동네 내과를 찾았다. 식욕과 무욕으로 불면의 밤을 지새웠다고 볼멘소리를 해 대고 영양제를 투여받았다.

내과를 뒤로 한 발걸음은 무거웠다. 양갈래로 늘어선 건물들이 묵묵한 내 발걸음을 조소하듯 서있고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도 오늘은 무사안일의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선서를 한 것만 같다.

오늘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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