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최고!

by 여비

나는 김치가 좋다.

어렸을 적에는 김치를 먹지 못했다고 한다. 나와 동생을 두고 서울로 간 엄마가 없는 자리엔 할머니가 계셨다. 툇마루에 혼자만 앉아있어도, 대추나무집 영숙이만 보여도 짠한 맘이 되고 "심심하다. 심심해" 하는 궁시렁도 맥이 빠졌다고.

이웃집인 복구네 밥상엔 얼기설기 썬 오이김치가 빨간 먹칠을 하고 올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 집 밥상엔 무짠지 하나도 없는 맹탕 밥상이다. 멀건 간장종지에 아버지가 받아온 미제 버터가 큼지막하다. 펄펄 끓어오른 가마솥에 밥은 함지박에 그득히 담아내 쪽문 너머로 들고 나와 동생들은 한소동이다.

숟가락을 꽂아 놓고 눈치를 본다. 누가 먼저랄까? 눈동자에 힘이 들어있다. 할머니는 "어서들 먹어라. 주욱 쭉 한 여름 장대비 쏟그듯 커야 된다." 하며 손에 간장종지를 쥔다. 하얀 밥에 양 것들 먹는 미제 버터가 미끄러진다.

할머니의 유별난 사랑은 매운 김치를 못 먹게 했다. 선 눈물 찍어내게 라는 김치라 그랬다 한다.

김장김치가 바닥을 보인다. 겨우내 지져먹고 볶아서 들기름 언저리에 두른 볶은 김치는 수육과 쌈을 싸 먹는다.

고등어 바닥에 묵은지를 깔고 고춧가루 살살 뿌린 고등어찜은 또 어떤가..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 또한 겨울밤을 깊게 누르고 양념 털어내고 쫑쫑 썬 김치와 부침가루가 만난 김치전엔 막걸리가 한 사발 더하면 화룡점정이다. 이렇게나 여러 가지로 요리수를 창조하는 김치이다 보니 김치 담그기가 취미가 되었다.

텃밭에 푸르게 올라온 배추만 보아도 물때 만난 강태공이다. 야들 거리는 어린 배추로 물김치를 하고 고춧가루 물 풀어 간수에 채워둔다.

사스로 온 세상이 어지러웠을 때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김치가 면역력을 높여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하고, 현대인의 무서운 질병인 암도 예방한다고 하고, 비만으로 부터 탈출할 수 있는 다이어트도 하고 특히나 신김치는 유기산이 많이 들어있어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엄마 생각을 하면 할머니의 볼썽 사나운 투정부터 생각난다. 미워서였을 거다. 나도 남편이 미워 한 톤 높은 소리로 툴툴대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못해준 손길에 부아가 치밀고 짠한 맘에 미제 버터 밥도 해주고 심심치 않게 책도 읽어 주고..

빨간 김치와 무청 매달린 처마엔 설운 바람이 지나간다. 나는 철없던 시절의 강을 건너 밥상을 만드는 엄마가 되었다.

모자랐던 모성을 결핍의 손길이 완전한 우주를 만들고 싶어서였나 보다.

맹탕 밥상이 보기 싫어 고춧가루물이 든 김치를 만든다. 벌써부터 침이 고인다. 김치는 나의 가족이 찾는 최고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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