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날

by 여비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절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 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 호프는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10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솔제니친, 이반 테 니소 비치의 하루>

윗글은 내가 처음으로 소설 요약을 하기 위해 발췌한 글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여서 노트에 메모하여 둔 글로 머릿속이 헐렁한 날엔 종종 꺼내 읽는다.

여중시절,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돋보이고 싶어 요령을 부려보지만 많은 학생들 중에서 선생님의 눈에 들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였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음악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강당으로 갔다. 피아노에 몸을 숙인 채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누구든 반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다. 나는 음악 선생님이 되기로 했다. 준비해온 가발을 뒤집어쓰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불렀다. 애타고 절절한 심정으로 울려 퍼지는 곡조는 청소를 하다가 놀란 우리 반 친구들을 강당으로 몰려들게 했다. 영숙이는 내가 뒤집어쓴 가발을 보고 감동했고 애절한 나의 노랫소리는 반장의 귀를 놀라게 했다.

친구들의 공모로 국어 선생님이 강당으로 끌려오다시피 했다. 난 부끄럽고 창피했다. 친구들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한 것도 국어시간을 기다린 것도, 그리고 강당 안에 내 모습도 모두 모두 굴욕스러웠다.

슈 호프는 대신 줄 서준 덕에 얻은 잎담배에서 속여서 한 그릇 더 먹은 죽에서 찌뿌드드하던 몸이 씻은 듯이 나은 것에서 눈앞이 캄캄한 날이 아닌 행복한 그런 날이라 했다.

순간 나는 머릿속에 좋아하는 글귀가 생각났다. 장난기로 발동했던 나의 생각이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에 눈에 든 웃지 못할 일이었으니깐...

아마도 슈 호프의 운이 좋은 날과 같은 날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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