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화려한 싱글>이란 노래를 많이 불렀다. 친구들과 거한 저녁을 먹고 배부름을 해소하기 위한 피난처는 노래방이었다. 친구 모두는 유부녀였다. 나를 포함한 나의 친구 넷은 신혼초 한 동네서 살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만고만한 고민을 가지고 지지고 볶고 얼렁뚱땅 살았다. 연습해보지 않은 결혼생활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신세대가 아닌 쉰세대에 나는 무서운 남편으로 인해 맘 졸이며 살았다. 대인배인 남편은 밖에서만 이었다. 내게 요구하는 일들은 버거웠다. 특히나 같은 공간에서의 생업을 위한 장사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거울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었다. 적어서 삐져나온 살핍, 너무 커서 허수아비 같은 어리숙한 꺼벙이의 눈, 그리고 불안하고 눈치를 보는 코치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기름진 음식과 순도 약한 알코올이 느슨이란 안정감을 만났다. 싸구려 벽지엔 현란한 남녀의 반쯤 벗어 제친 브로마이드가 장승처럼 서있다. 스위치도 분간 못할 어두운 조명이 젖은 마음을 가라앉힌다.
성질 급한 은옥이가 마이크를 잡는다. 널을 뛰는 듯한 급한 템포에 우리는 손뼉을 보태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노래방 기계 꼭지엔 "1236@, 2348*,5693#, 애창곡의 번호가 나란하게 줄을 선다. 노래 사이로 훅 들어오는 경쾌한 기분이 얼마만인지.. 붙이다 만 케이블 줄, 지하통로를 넘은 재고의 스피커, 떨어져 나간 볼트 넛트에 상자갑은 머리 위로 던져 버렸다.
손때 묻은 장부 안에는 빨간 숫자가 어른댄다. 결재를 해 줘야 할 아라비아의 지렁이 글자가 꼴도 보기 싫다. 나는 얼른 덮어 버렸다. 한숨이 나온다. 배달을 나간 직원은 함흥차사다. 엎어지면 코 닿을 때를 태평양을 건너간 것인지..
구비 구비 오르락내리락 투닥대며 그럭저럭 남들이 말하는 황혼기의 문턱이다. 나이가 말해주는가? 무서운 남편은 더 이상 무섭지가 않고 볼멘소리를 해도 들은 척을 하지 않는 소귀 신이 되었고, 때맞춰 차려내야 하는 밥상은 더 이상은 집밥이 아닌 외식이 되고 가당찮은 말로 상처받은 수많은 날들은, "그래. 이유가 있었겠지" 하며 덤덤히 넘기게 되었다.
거실 한편에 낡은 레코드판이 보인다. 손때가 묻어 있고 빛깔도 바래졌다. 초보라서 힘들었던 내 결혼생활은 지나갔다. 시간은 묻고 낡은 레코드판 속의 노래는 화려한 싱글이 아닌 편안한 솔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