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빛나는 시절

by 여비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로 이사 오게 됐다. 대학로의 허름한 자취방을 접은 후였다. 아버지는 공부가 안되면 돈벌이라도 하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하긴 나라도 빈둥대는 나에게 했을 듣기 싫은 말일 것 같다.

통 건물 모두가 서점이다. 1,2층은 책들이 둥지를 틀었고 3층은 내방을 포함한 사장님의 살림집이었다. 계단을 끝에 두고 펼쳐진 다다미방이 나의 거처다.

길 건너 사거리에 중, 고가 나란하게 붙어 있다. 한 참내리막엔 초등학교도 있는 지역이라 지방이라도 번화가인 셈이다.

아버지의 소개로 책방 점원이 되었다. 사장님은 동네 토박이였다. 서점 주인은 50년째이다. 영업과 판매는 모두 도맡아 하셨다. 내가 할 일은 학교에서 주문받은 책 정리와 청소 그리고 잔심부름이 전부였다.

**중학교 세 곳 <수학의 정석... 완전정복...> 눈에 익은 참고서는 쉽게 정리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없었다. 아버지 벌 되시는 사장님은 전근대적인 분이셨다.

버럭 소리부터 지르신다. 무섭고 아득한 기분이 앞서 알고 있던 것도 허둥대기가 일쑤였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공부가 안되면 돈벌이를 해야 한다. 좋아하는 공부 아니었잖아?"

플래시를 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손에는 노트와 볼펜을 들고서 책장을 그렸다.

미술시간 데생을 하듯이 그려나갔다. 첫 장엔 참고서 다음장엔 교양잡지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워 표시했다. 좋아하는 소설 코너엔 사인펜으로 낙서와 간단한 내 잡문도 적어 두었다. 나만의 비망록을 적었다. 매일 밤 이 그림들로 고군분투했다. 짜 맞추듯한 퍼즐 조각이 서서히 완성도가 되는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쓰기의 행위다. 낮엔 청소와 잡일을 하고 잠을 버리고 책장을 누볐던 그 시절.. 한 줄 두 줄 그리고 한 칸 두 칸 네모진 시간들이 켜켜이 쌓였던 빛나는 시절이다. 해야 할 동기가 있고 책의 숨소리가 좋았다.

공부가 안되어 많은 지식은 넣지 못한 머리지만 불빛에 빛나는 책사이를 누볐던 그 시절은 잊지 못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