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읽은 고전소설엔 멋지고 고풍스러운 유럽이 많았다. 서양 소설을 주로 읽다 보니 막연하게 궁금했다. 나는 고색창연한 성과 수려한 자연들 해 질 녘의 좁다랗고 낯선 골목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터벅터벅 걷는 상상을 했더랬다.
언젠가는 멋진 내 뒷모습의 배경은 유럽이고, 도시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보자고...
친구가 C방송국에 피디였다.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성지순례팀에서 일을 본다 하고 마침 결원이 된 자리에 나를 끼워 주었다. 때 마침 여러 정황상 서울살이에 지겨움이 실실 올라와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일도 전혀 다르고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상태라 한조로 묶였다 해도 완전 혼자였다.
비행기로 14시간이 지나 도착한 파리의 드골공항은 밤공기가 차가웠다. 깜깜한 거리엔 이렇다 할 불빛도 횡횡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로 감기 걸리기가 딱이었다. 삼삼오오 저들끼리 모여 얘기를 하고 화려한 샹그릴라 불빛에 잘 차려진 요리가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낯선 곳에 집 잃은 강아지가 따로 없다. 내 옆에 목사부부는 이번이 3번째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세련되고 우아한 처세는 단연 돋보이다 못해 볼성 사납기까지 했다. 또 다른 시누이와 올케는 화장실에서 손을 닦다 두고 나온 다이아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하고 뭔지도 모르는 자기 자랑을 끝도 없이 늘어놓아 가뜩이나 심기가 편치 않은 나를 혼자 내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친구는 여행이 아닌 일을 하러 왔기에 나와 동행은 소소할 수밖에 없고,
더욱 하이라이트는 종교행사에 동원된 우리들이었다. 40주년 행사에 갈릴리 바다 선상에서의 기념예배에 모인 주최자와 모교회 합창단과 함께 온 신도들까지 장관이 따로 없었다. 난 그때까지도 신앙심은 바닥이고 생각했던 낭만의 여행은 썩은 무를 씹는 기분이 되고, 떠나올 때의 설렘도 없어진 지가 오래였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콩코드 광장에서 환호하고 '진주 목걸이'로 유명한 모파상이 에펠탑 2층에서 점심을 먹었다던 그곳엘 티켓을 끊었고 몽마르트르 언덕에 바람을 맞았다. 이름 모를 화가에게 초상화를 부탁해 남편에게 자랑도 했고 맞은편에 개선문을 바라보며 아직 펼쳐지지 않은 멋진 미래도 꿈꾸었다. 세느강변의 밤바람을 맞으며 시어머님과 나의 엇나가는 언쟁들에 대해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생각했고 풀리지 않는 나의 존재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어설픈 개똥철학의 물꼬도 만졌다. 타인들과 마주하는 어색함,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나의 낯가림, 친절을 가장한 싸늘한 무시들 속에 혼자가 아닌 혼자만의 여행은 그렇게 어찌어찌 흘러가고..
나는 다시는 절대로 혼자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식구들과의 갑작스러운 공동체 생활이 다소 불편하고 나의 사생활이 보인다 해서 불만했던 그, 전에 일들이 마구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본래가 혼자서 먼 나라에 방랑을 하고 사색에 잠겨 고독한 군상을 흉내나 내는 수도자가 아닌 것이다. 낯선 곳에서 도도하고 멋스러운 자태로 석양빛을 맞는, 넓은 챙모자를 쓴 긴 머리 소녀가 아닌 거다. 그렇게 내가 어려서 동경하고 꿈꾸었던 혼자만의 여행은 일단락되었다.
그래도 머릿속에만 그려왔던, 소설 속에서나 읽어왔던 서양의 풍광들을 실제로 봤다는 게 어딘가...
꿈만 꾸었던 낯선 나라로의 여행을 현실로 얼떨결에 저지르고 보니 새로운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것도 신혼초에 시어머님과 한집에서 살면서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때의 답답했던 단칸방에 책 속에서 만난 호기 어린 꿈이 아니었다면 처절했던 현실을 어찌 견뎌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