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아 빨리가라

by 여비

무거운 솜뭉치 같은 몸뚱이로 출근을 했다. 영업부에선 오늘도 숫자 고문을 한다. 마감 48시간... "으 미치겠다. 이놈의 회사를 때려치우고 시집이나 가야지"

점심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린다.

무릎 밑이 까지도록 굽실대며 가짜로 적어놓은 숫자를 조소해 보고 한숨이 절로..

아직도 보름이나 남은 월급날을 기다린다.

"두 커플로 묶어 가는 거 알지?" 선배 P가 말한다. 생각 속에 머리 모양은 굴린 웨이브로 살짝 애교스럽게 묶인 내 머리가 입꼬리를 실룩되게 한다. 볼터치는 핑크톤으로 귀여운 콘셉트이다. 어색하지 않은 입술색은 어두운 브라운이다.

체크남방에 흰 바지? 아니 진 슬랙스가 나을 것 같아. 머리가 하얗게 된다. 청 슈트를 겉옷으로 입으면 너무 딱딱하지..

아이 모르겠다. 그날 아침 맘 가는 대로 입고 가야지 뭐하고 생각했다. 받아놓은 날짜는 왜 이리 더디 가는지 모르겠다.

아쉬운 타종소리에 시험 답안지를 교탁에 놓았다. 객관식 문제는 그럭저럭 칸을 메웠다. 그러나 맨 마지막의 주관식 여섯 글자는 나의 머리에 불을 지르고 결국 빈칸으로 연필만 툭하고 내리쳤다. 아리송한 나의 두서없는 기억력이 미워져 어젯밤의 게으름을 자책하게 한다. 5분 동안이라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찾지 못한 두 글자를 찾았을 텐데 속상한 마음뿐이다.

위의 두 글은 기다리는 시간으로 밑의 글은 안타까워 아쉬움의 시간으로 빨리 가는 시간을 말했다.

시어머님의 49제 납골묘에 다녀왔다. 고무줄로 시간을 늘려봤다 줄여도 보았던 나의 어린 시절과 "시간아 빨리 가라" 했던 시어머님의 막연한 음성이 들린다.

기다리는 소망 속에 안타까운 아쉬움의 시간들이 시소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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