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포스터엔 지금,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나요?
당신을 위한 여행을 떠나세요.라고 빨간 글씨로 박혀있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레고리우스는 크게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해 보았다.
스위스 태생 파스칼 메르시아의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앞부분이다.
어둑함이 묵직한 사위 곁에 찢기 듯한 폭우가 쏟아지는 날 아침, 출근길에 다리 위에 서서 자살을 시도하는 빨간 코트를 입은 낯선 여인을 보았다. 그레고리우스는 언제나 한치의 실수 없는 교수다.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고리타분할 만큼 정해진 질서를 묵묵히, 거스르지 않고 라틴어의 <실수하지 않는 사람> 문두스다.
이미 출근시간을 넘겨 버린 실수를 한 이, 아침의 강물로 뛰어들려는 여인을 만류한 사건은 문두스를 버렸다! 교수로서의 자긍심, 제자들에게 받는 존경심, 그리고 직장도 버렸다. 아무 의미 없는 추킴도 겉 추장스럽다. 일상의 재미도 모르고 평행의 다리 위를 걷는 두 다리는 생기를 져 버렸다. 그녀가 두고 간 책 한 권을 들고 15분 후면 출발하는 리스본행 열차표를 끊어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앞서고 뒤서기를 하고 네 명의 주된 인물이 등장한다.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절친과 사랑의 화음인 에스테파니아.. 그레고리우스와 만나는 에스테파니아의 흐르는 듯한 배지 색 프렌치 코드는 지적이었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점점 알게 되는 새로움에 지루한 일상은 산뜻한 촉에 틔움의 싹이 된다. 잔잔한 물결 안에 동화되는 하늘거림은 일정한 궤도를 부숴버리고 미지의 낯 섬에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그레고리우스가 밤새 타고 온 야간열차는 지루한 일상을 벗고 날이 밝아오고 그는, 영혼이 이끄는 대로 리스본에 도착한다.
영화 속 마리아나의 대사는 '당신은 지루하지 않아요.'....
영화를 보는 나는 그레고리우스처럼 두근댔다. 그의 교수 자리를 버린 그, 무엇을 찾으려고 설레었다. 내가 여태껏 가지런한 틀을 벗지 못하고 굴려도 굴려도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는 그 자리에 도돌이표 생활이다. 허덕거리는 생에 미련을 떨었던 많은 날들, 단 한 번도 일상을 팽개쳐 보려는 생각을 못했다. 어리석고 용기 없는 나였고 나를 사랑할 줄 몰랐다.
나는 영화 속 그레고리우스를 바라보며 이, 우둔한 생각들을, 그리고 각박한 세상을, 이제는 거리를 두어야겠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내 속에 자리 잡은 꼭 잠긴 자물통 같은 관념들을 놓아 버려야겠다. 내 손에 잡은 헛된 꿈들을 날려 가게 바람을 마주하고... 바라건대 리스본으로 떠난 그레고리우스의 앞길에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