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

by 여비

나는 할머니 집과 고모집을 번갈아 살았다. 고모집은 산허리를 돌아 군청을 보고 있었고 할머니 집은 군청을 뒤에 두고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할머니하고 집안일을 돌보아주는 먼 친척 양할머니와 살았다.

할머니는 공부가 짧아 책상에 앉아 일하시지 않았지만 장정들이 하는 소를 키우고 관리도 하고 때론 옷감도 받아다가 넘기는 상점도 하셨다. 언제나 내가 일어나면 방안은 비어있고 새벽예배를 다녀온 자리가 남겨져 있었다. 나무목침 위에 펼쳐진 성경책엔 미제 연필이 앉아있었다.

덕구는 나의 친구였다. 흰털 복숭이가 잡종인 강아지로 두 살배기다. 나는 종종 할머니 우사에 덕구를 데리고 가고 노란띠로 역은 목줄을 풀어놓고 뜀박질도 했다.

덕구는 똑똑했다.

한 없이 하늘이 높았던 날 우사 옆의 매어 둔 말뚝을 뽑아주면, 스스로 집까지 찾아갔다. 덕구와 나는 신나게 앞과 뒤를 다투며 달렸다. 바쁜 할머니나 일군아저씨들은 나와 놀아주지 않았다. 노란 두 눈이 슬퍼 보일 때나 개 궂게 환한 아가리로 나를 올려다볼 때는 덕구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내 옆을 졸졸 따르고 마당 가운데 누워 한대 잠을 잘 때에도 내 발소리가 나면 쪼르르 반기며 짖는다.

덕구가 개처럼 자라자, 고모는 덕구를 잡아서 약으로 쓰겠다고 말했다. 고모부가 중풍으로 누워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으니 별도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펄펄 뛰었다. 절대로 덕구를 잡아서는 안된다고 울고 불고 소란을 피웠다. 악다구니를 하도 치니깐 차선책으로 덕구를 팔아 약을 쓰는 것으로 결정됐다. 어린 나는 고모의 그 어마 무시한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덕구는 더 이상 내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 동안 고모가 나를 불러도 물이 줄줄 흐르는 복숭아를 손에 쥐어 주어도 알은체를 안 했다. 할머니의 우사에만 가 있고 산허리를 돌아 군청 근처엔 얼씬도 안 했다. 군청 마당에 마당극이 들어온 날도 나는 집에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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