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휴일이라 집에 왔다. 이번엔 휴가를 신청해 일주일 동안 서울에 오게 됐다고 입이 함지박만 하다. 오월엔 어버이날을 기념하느라 자녀들은 분주하다. 챙겨야 할 부모님과의 맛난 저녁을 위해 마음이 떴다고 하는 딸...
기쁜 날이라 옷장 속에 넣어둔 옷들을 꺼내려고 손을 넣었다. 문득 손에 잡히는 하얀 스카프가 있었다.
'어쩌면... 이게 어떻게 여기 있을까? 7년도 넘은 건데.'
하얀 스카프에 난초 잎들이 어른대는 무늬를 보면서 옛날 일이 생각나 맘이 울렁댄다.
시어머님은 박사님들의 식사를 위한 대한민국의 관공서 '밥 이모'로 직장엘 나가셨다. 태릉에 있던 K원이 대전으로 이전하게 되어 더는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근속 우수자로 금반지와 난의 절개처럼 곧은 하얀 스카프를 부상으로 받았다.
손가락 마디가 굵어 금반지는 내게 끼워졌고 빛깔도 고운 하얀 스카프도 내 차지가 되었다. 처음으로 받아 본다는 상이라 하셨다. 소학교도 마당 언저리에만 가서 등에 매달린 남동생을 돌보며 하염없이 교실 창문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언제나 밝으신 시어머님은 상장을 어루만지시며 "박사님들도 김치와 두부는 내가 만든 것 아니면 안 드셨다." 하며 뿌듯해하신다. 나는 극구 사양을 했다. 고단했을 시간들과 고약스러운 가난으로 얼룩진 그날들이 맘 한편에 부딪친다.
그렇게 받은 금반지는 팔아서 생활에 보태고 지금 내손에 들린 하얀 스카프는 시어머님께 받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때에 나는 시어머님의 마음을 받았고 자식사랑을 목에 걸었다.
이렇게 우연히 옷장 한 구석에서 발견한 하얀 스카프를 만져본다. 그리고 삭정이 같은 두 손으로 내 목에 둘러주던 하얀 스카프를 한번 꼭 매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