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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군이 Aug 23. 2023

나도 느끼지 못했던 아픔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내 어릴 적 추억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아픔이 되었나 보다…




남편이 일하는 곳을 따라갔다.


예전부터 내리막길이 어마어마한 곳이 있다고 꼭 구경시켜 주고 싶다며 가자고 했었는데 달동네 살았던 나에게는 그다지 놀라울 일이 아니었기에 그동안 따라가지 않다가 시간이 돼서 길을 나섰다.


언덕에 집들이 빼곡히 놓여있고 차 한 대도 간신이 지나갈 만한 골목에 신기하게도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어느 한 집에 물건을 갖다 주기 위해 잠시 주차를 하는데 내리막길이라 주차조차 쉽지 않아 남편이 낑낑되니 그 모습을 안타깝게 보시던 주민분께서 도와주시려고까지 할 정도였다.


나는 이 길 진짜 심하다며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평탄하지도 않은 언덕길에 간신히 주차를 한 남편은 물건을 갖다 주러 나갔는데 순간 차 안에서 내리막길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 영문을 몰랐다.


돌아온 남편도 보더니 당황해했고 눈물을 닦으면 닦을수록 넘쳐흘렀다.

잠시 후 그 언덕길을 벗어난 후에야 깨달았다.

갑자기 흐른 눈물의 의미를...




내 나이 7살 때 나는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바로 아래층에는 유치원이 있었고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그곳에 있던 놀이기구를 탔기 때문에 나는 우리 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으로 들어 가 있었어야 했다. 코 앞에 유치원을 두고도 난 그 유치원을 다니지 못하고 혼자 걸어서 좀 더 저렴한 교회유치원을 다녀야 했다.  


뭐...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옥탑방에서 장례를 치르니 집주인은 당연히 싫어했기에 갑자기 쫓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타령하다가 딸만 셋이 되던 우리 아빠는 지방으로 가려했지만 엄마의 반대로 그 동네 달동네 집을 찾아 살게 된 것이다.


비록 달동네집이었지만 처음으로 갖는 우리 집이었다.


물론 대출에 전세로 사는 사람들도 껴있었고 외삼촌, 이모도 돈 내고 들어와 살아서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 5명은 방 한 칸에 사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갖는 우리 집이었다.


그런데 달동네였다.


달동네를 검색해 보니 높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판자촌으로도 불리지만 높은 곳에 위치해 달과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맞다... 그런 동네였다.


정말 많은 일들이 추억으로 남은 동네이다. 재개발 1순위(?)로 현재는 대단지 아파트가 쏙쏙 들어가 있지만 내리막길은 아직 조금 형태를 갖추고 있다.


난 그런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그다지 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데 남편 일 따라갔다가 갑자기 달동네 길이 떠오른 것이다.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를 가진 나는 그 내리막길이... 그렇게나 무서웠나 보다. 눈이 오면 어른들이 연탄을 깨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깔아 두셨지만 주저앉아 내려가기 일쑤였다.




그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남편,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간 곳에 계단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내리막길에서 내가 주저앉으며 갈 수 없다고 소리쳤다. 엄마의 모습에 당황한 아이는 살갑게 뒤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나를 다독였고 그 모습에 나는 용기를 내어 한 칸 한 칸 앉아서 내려왔었다. 강한 척은 잘하면서도 유독 내리막길에서는 다리에 힘을 너무 꽉 주고 결국 주저앉아 내려오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유년시절... 난 그 길이 너무 무서웠다.

어떤 아이가 발 한번 잘못 디뎌 데구루루 굴러갔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바들바들 떨었었고 부모님이 싸우시고 밤에 엄마 따라 집을 나서면 캄캄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내려가야 했던 그 길이 참 무서웠다.


물론 바로 아랫동생은 높은 곳에서도 잘도 뛰어내렸지만 또 그 아랫동생은 그다지 높지 않은 내리막길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지더니 특히나 사다리에서 내려오다 떨어져 머리를 다쳐 피가 마구 나서 수건으로 감싼 후 동생을 안고 내리막길을 뛰어 내려가던 엄마의 모습… 그런 것들도 내 마음 한편에는 아픔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달동네서의 추억이 눈물을 마구 쏟을 정도의 아픔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다.


본인은 서울에 살았었지만 논이 펼쳐진 평지에서만 살다 보니 이런 언덕길을 보고 신기하기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대단하다 싶어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내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며 남편은 괜히 데리고 왔다고 미안해했다.


그동안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아픔을 깨닫게 되었으니 치유할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인 것 같았다. 사실 살면서 내리막길을 마주할 때마다 무섭긴 했지만 어떻게든 내려갈 수 있었으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다시는 그 내리막길을 가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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