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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군이 Sep 13. 2023

전복! 너 뭐야?

난... 애초에 전복죽을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코스트코에 주물솥이 할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젠가 로또가 되면 가서 실컷 담고 싶은 그런 곳.

요즘은 물가가 너무 올라 한 달에 한 번 가던 것도 가지 않고 있었는데 세일 소식은 괜히 맘을 설레게 했다.


어릴 땐 요리하는 걸 너무 좋아했다.

바쁜 부모님 대신 주르륵 딸린 동생들에게 음식을 챙겨줘야 했었는데 다행히도 동생들은 만들어주는 족족 잘 먹었다. 그게 그렇게 재밌었다.


결혼 후 신나게 요리했는데 곰같이 생긴 남편은 의외로 입이 짧았다.

너무... 짧았다.

그리고 뭔 미식가가 된 마냥 맛난 것 타령만 해댔다.


아이가 생겨 잠시나마 재주 부려가며 요리하긴 했었는데 그 아이도 점점 입이 짧아졌다. 그리고 유전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던 건지 아이도 아버지를 닮아갔다.


그런데 주물솥에 솥밥을 하면 그렇게 맛나다고들 해서 코스트코에서 할인한다는 그 주물솥이 예전부터 사고는 싶었으나 비싸서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리고 금전은 항상 그렇듯 넉넉하지 못하기에 과연 솥을 사서 내가 얼마나 해 먹을 수 있을까... 라며 가성비를 따지고 있었고 결론은 일단 집에 있는 스텐냄비로 해보자! 였다.


때마침 전복 할인 소식도 날아왔다.

'그래! 몸보신에는 전복이지!!' 하는 맘에 주문 완료!


산소팩에 넣어져 전복은 내 앞에 도달했다.


호기롭게 산소팩을 뜯고 전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전복과 같이 보내준 솔로 전복을 문질러댔다.

 

움츠려든다.

아... 살아있나 보다...

징그럽다...

으악!!!!!!!!!


생각해 보니 예전에 동생이 전복을 보내줬을 땐 남편이 손질해 주었고 내가 14년 정도 되는 결혼 생활 중에 돈을 주고 살아있는 전복을 산 것도 처음, 전복을 손질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해산물(?)은 오로지 아빠가 좋아하는 자반고등어, 동태탕정도였기에 결혼하기 전에도 집에서 전복이란 걸 본 적이 없었다.


징그럽기도 했지만 살아있는 것에 솔을 문지르니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에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하필 남편이 오늘따라 늦게 온다고 했었다.  남편을 기다려 손질을 부탁해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너무 늦을 것 같고 어찌 됐건 저녁을 먹어야 하니 "어미는 강하다!!"라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읊으며 질끈 눈을 감고 문질러댔다.


문지르는 게 끝이 아니다!!

내장 떼고 입도 떼야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전복은 또 왜 그리 많은지 총 11마리를 미친 듯이 해치웠다. 뭔가 하얗게 된 게 더 징그럽게 느껴지고 저걸 또 잘라야 하는데 내가 죽여서 그런지 전복이 쪼그라져 있었다.


다시 또 혼란스러웠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레시피를 뒤져본다.

"전복 스텐냄비밥... 전복 스텐냄비밥... 어라 뭐가 이리 많지..."


쉬운 것 같은데 레시피마다 조금씩 다르다...


멘붕이 온다.

예전엔 레시피 따윈 보지도 않았는데 집에 미식가 둘이 사니 뭔가 더 잘하고 싶은 맘에 뒤져보는데 더 어렵다.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레시피를 다시 살펴보며 참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 내장 넣고 볶고, 잘라놓은 전복도 넣고 미리 불려 놓은 찹쌀도 넣고 물도 넣었다.


이제 타지 않게 열심히 젖고 뚜껑 닫고, 혹시 모르니 다시 젖고 뚜껑 닫고...


근데 왜 죽 같지...

다시 멘붕이 온다... 뚜껑을 열고 수분을 열심히 날려준다.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

양념장 맛으로라도 먹어야 한다.


요즘 그나마 남편은 주는 대로 먹기도 하지만 아들 녀석은 사춘기라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기에 잠시 고민을 해 본다. 돌솥비빔밥 같은 느낌 좋아하니까 집에 하나 있는 뚝배기에 참기름을 바르고 슬쩍 더 볶아 방 안에 넣어주었다.



"양념 적당히 넣어가면서 먹어~"

"오오~~"


저 말뿐이었지만 그래도 안도감이 들었다.


나도 홀로 식탁에서 맛을 보니 그다지 나쁘진 않았지만 리소토같이 된 나의 전복솥밥이 맘에 들진 않았다.

한 시간 뒤쯤에 남편이 와서 보더니


"전복죽을 하지 그랬어~"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전복솥밥이 해보고 싶었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요즘 솥밥이 맛있다고 해서 해봤어. 맛있게 되고 자주 먹게 되면 주물솥 사볼까 했는데 못 살 것 같아."


그래도 다행히 맛있다고들 먹으니 안심을 하고 글을 써 보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근데 나 왜 찹쌀을 넣은 거지?? 솥밥이면 그냥 흰쌀 넣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난... 애초에 전복죽을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다음에 또 전복을 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그냥 전복죽을 만들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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