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늙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애도 컸으니 집에서 하던 일 접고 나가서 취직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해. 네가 하는 일이 힘들어서 그래. 이모 친구도 너랑 같은 일 하다가 힘들어서 접고 이모 하는 일 배워서 그거 한데. 너도 이모한테 그거나 배워서 해."
"아니~ 일 하기 싫다고."
"일 안 하면 어떻게 해. 돈 벌어야지. 박서방 혼자 벌어서는 어렵잖아."
하아...
남의 인생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난 이모가 살아온 인생을 따라 살고 싶진 않다.
개인사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모가 세탁업? 같은 걸 하니 그게 잘되는 것 같다며 엄마는 내게도 그걸 하라 했다.
그리고 그게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아파트 관리업? 같은 걸 하니 이제는 그걸 하라고 하시는 거다.
그건 사무직 좋아하던 이모가 할 일이고...
며칠 전 '라디오스타'라는 프로그램에 장항준 님과 김풍 님께서 나오셔서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다며 주부였을 적 김은희 작가님의 생활을 들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주부였지만 주부 역할(?)은 잘 못하셨고 새로운 배움에 자주 도전하셨던...
그러다가 작가가 되신 분...
나는 취미생활이 자주 바뀌는 남편을 타박했었다.
남편의 능력들은 새롭고 신기했으며 매력적이었지만 종종 금전이 들어가고 금방 식어 잔재들만 남았다.
그에 반해 나는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며 꽉 막힌 사고방식을 드러냈었다. 나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에게도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전해주고 싶었으나 답답하게도 본색을 보이곤 했다.
그래서 그 방송은 또다시 날 반성하게 했으며 나를 옥죄고 있는 것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채 엄마, 아빠의 말대로 일만 죽어라 하며 살아왔다.
취미는 사치!
여행은 정신 빠진 놈들이나 가는 거라던 부모님 밑에서
이직하는 것도 욕먹는 행동이니 최대한 꾸준히 다니려 노력하며 여기까지 왔다.
물론 돈이 없어 어렵고 힘들게 사신 부모님이라 돈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게 사셨기에 지금은 좀 편안해지셨고 나에게 말씀하실 수도 있는 거겠지만 존경받을 수 있는 부모의 자격은 갖추지 못하셨다.
어릴 때는 돈이 없어서 안된다고 하고, 커서는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며 못하게 하고...
그냥 내가 하는 건 다 못 미덥고 하찮았던 걸까...
아직도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따윈 알아보려 하지 않고 이모가 뭘 한다고 하면 그거나 하라고 하니...
어찌 보면 같이 살지도 않는...
마흔 넘은 자식이 뭘 좋아하는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반대로 지금 하는 일 때려치우고 취직하라는 것도 좀 그렇잖아...
부모랑 함께 살 때도,
지금도 계속 일만 하는데...
이제 좀 쉬라고 해도 되지 않나...
일하지 말라고 해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부모님께 배운 건 평생 일하는 것뿐이라 그만두는 것도 쉽지 않은데...
내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돈에 얽매여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잠시 그만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현재 내가 하는 일도 너무 좋고 보람되지만 더 늦기 전에 나에 대해 알아보고 그동안 못해본 것들을 해보고 싶어서 고민 중인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내가 하던 일을 접으면
남편이 외벌이가 되면서 경제적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도 나름 중요한 시기를 겪는 중인데 내가 더 세심히 살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이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한다.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된다.
그동안 해왔던 일을 안정적으로 할 것인지,
뭘 할지도 모르는
그냥 이런저런 새로운 일에 도전할 것 인지.
20년 넘게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습관처럼 돈을 벌려고 하겠지만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
용기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