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냄새가 있는 사람이 좋다
나는 냄새가 있는 사람이 좋다. 집에서 사용하는 섬유유연제나 목욕탕 스킨 냄새라도 상관없다. 어떤 사람이 내 앞에 섰을 때 '왔구나' 느낄 수 있는 고정적인 향이 있는 사람이 좋다.
작년에 헤어진 사람에게선 만날 때마다(사귀기 전) 다른 냄새가 났다. 아마도 만날 때마다 계절과 상황,서로에 대한 마음이 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에겐 이렇다 할 강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하룻밤 재워준 친구의 향수를 뿌리기도 했고, 만나기 직전 막 바른 핸드크림 냄새가 나기도 했다. 차가운 겨울 공기 냄새가 나기도 했고, 여름밤에 마셨던 맥주 냄새가 나기도 했다. 연인관계가 된 후 나는 그 애에게 좋은 향수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때마침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을 생각하며 향을 고르는 일은 꽤 설렜지만, 선물의 상대와는 얼마 못가 싱겁게 헤어졌다. 이별 직후 나는 그에게 선물했던 똑같은 향수를 구매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 향수가 내 취향에 맞았을 뿐. 곁에서 향을 맡을 수 없으니 스스로에게 뿌리기로 했다.
갑자기 가을이 찾아왔다. 긴 머리 사이 목덜미에 향수를 뿌리고 나선다. 우디 향이 어울리는 좋은 계절이다. 일 년 만에 이 향을 다시 맡으며 선물을 고르고, 건네고, 만날때마다 같은 향이 나던 작년의 일들이 떠올랐다. 냄새가 이렇게 상기력이 강한 감각이었나. 요즘 자주 나오는 노래 가사처럼 이 향이 스쳐 지나갈 때면 그 애도 한번씩 선물 받았던 날을 떠올리겠지. 향수를 선물했던 건 잘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