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긴 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이 Apr 29. 2019

서울의 속도, 서울의 방식

친해지는 것 없이 외면하는 것들만 늘어난다.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는 날이 많았다.


서울생활에서 나를 처음으로 무너뜨린 건 사람도, 회사도 아닌 영동대교였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30분이 넘도록 멈춰 서있는 동안 앞으로 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함만 커졌다. 어떤 시간엔 버스를, 어떤 시간엔 지하철을 영리하게 선택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1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 택시기사님이 낯선 대교 이름을 나열하며 선택지를 들이밀 때면, 정답을 알면서도 노련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데려가는 미터기를 보며 조급해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사람이 가득 찬 출근길 지하철은 10분만 일찍 타도 앉아서 갈 수 있지만 그런 당연한 일들을 항상 뒤늦게 알아챘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은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누군가에게 비밀일 수 있겠다. 나만 모르게. 그래서 자꾸 서운하게. 서울은 서울의 방식으로 흘러가니까.    


전단지를 내미는 할머니의 투박한 손을 외면한다. 1호선을 찾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그의 엄마를 외면한다. 이어폰 넘어 들리는 호객 행위를 외면한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친절은 위험하다는 것만 확실히 배워서.


이 도시에서 친해지는 것 없이

자꾸 외면하는 것들만 늘어난다.    


저녁 6시 반 퇴근길, 미로처럼 복잡한 환승구간을 기계처럼 빠르게 걸어간다. 내가 한 박자 늦게 걷는 순간, 뒷사람이 약속에 늦을지도 몰라, 신경질적으로 나를 앞서가겠지. 그게 서울의 방식. 어쩌면 서울의 속도. 고속터미널에선 늘 길을 헤맸다. '호남선' 큼지막한 글자가 저렇게 친절히 길을 알려주는데 그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주춤거리던 나를 집어삼키는 파도 같던 서울 사람들.

지금 다음 열차를 놓칠까 빠르게 앞사람을 쫒는 내 모습도 누군가에게 파도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