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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세히 Feb 28. 2020

사랑노래 지겹지도 않니

헤어진 사람에게 3년만에 연락이 왔다.

온통 사랑 타령이었던 나의 첫 번째 책은 오랜 연애가 끝나감을 직감한 순간부터 적었던, 그러니까 그저 개인적인 일기였다. 사람들은 자꾸 사랑에 빠지고, 모든 연애는 끝이 나니까 잊혀질만하면 한 번씩 내 책도 팔려나갔다.    


‘책 하나 더 써’

J와 헤어졌다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끝난 관계에 대해 말을 덧붙이고 싶지 않다. 이별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 말고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책 속의 주인공이었던 그 사람에게 3년 만에 문자를 받고 이 밤에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잠 못 들고 앉아있는 꼴이 우습지만 확실히 깨닫는다. 일기든 글이든 짧게 끄적인 가사까지 내가 적었던 모든 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 사람. 내 인생에 여전히 영향력을 과시하는 사람.     


그 사람 이야기를 값을 받고 팔며 나는 나름 좋은 치유를 했다고 자부했다. 한 권, 두 권 팔수록 그 책에 담긴 감정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정말 내가 쓴 게 맞나 문장들이 낯설기도 했다. 때때로 고맙기도 했다. 몇 년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사람이었다. 내가 무너졌던 이유는 그가 나를 넘어뜨려서가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이 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는 미안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끝맺음이었다만, ‘끝’이라는 감정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감정에 책임을 묻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문자의 목적은 분명했다. 죄책감인지 회의감인지 나를 떠올리면 불편해지는 감정을 털어내고 싶다고 했다. 뒤늦은 사과를 받고 온종일 먹먹했다.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지금은 이천이십년이고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을 진즉, 아주 진즉에 지났다. 뻔한 답장은 하지 않았다. 답을 하는 순간 우리 사이에 또 이야기가 시작될 테고  구구절절 지겨운 사랑 노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두 번째 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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