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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세히 May 20. 2020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기분

 까짓것, 책도 혼자 만들었는데.

2년 전, 잠시 동안 나는 작가님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몇 개월 동안 책을 만들었다. 입점을 허락해 준 전국의 작고 조용한 서점에 책을 보냈다. 그곳에서 책들이 한 권씩 팔려나갈 때마다 입금 문자가 도착했다. 대체 누가. 대체 왜. 스스로도 '이게 가능하구나' 당황하고 놀라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400권을 넘게 팔아도 실상은 한 달치 월급도 채 안 되는 돈이었지만 기뻤다. 매 순간 고마웠다.


서점에 보내고 남은 책들은 내가 직접 들고 플리마켓을 나갔다. 때마침 독립출판, 독립서점의 열풍이 더해지던 때라 기회가 많았다. 창작자에서 판매자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평가했고, 이런 데서 파는 것치고 비싸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웃으면서 보냈다. 그런 사람들에겐 나도 책을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서점에서 팔리는 것과 구매자를  앞에서 직접 만나는   다른 경험이었다조심스럽게 책을 열어보던 사람. '다시 올게요'하고 정말로 다시 와준 사람. 이별 얘기뿐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함께 사간 커플. 그리고 한 권이라도 더 팔아주려고 지인을 대동하고 찾아와 준 친구들.


주말을 내내 플리마켓에서 보내도 사실 수익금이라고 할 게 없었다. 몇 권을 겨우 팔고 거기에 돈을 얹어 뒤풀이 술을 마셨다. 함께 책을 팔며 생긴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책 얘기보다 술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이후로 몇 번의 플리마켓은 팔 책도 없으면서 나갔다. 책을 파는 것보다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좋았다.


그때 알게 된 또 다른 몇몇 사람들은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는데 그게 어색하면서도, 나 역시 따로 부를 호칭이 없어 그들을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서로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대화하는 우리. 언뜻 보면 새로운 업계로 들어선 듯 보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아이의 엄마로, 어느 직장의 대리로, 취직을 앞둔 학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코스튬을 착장한 할로윈처럼. 작가라는 역할에 충실하며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처음 책을 만들 땐 엑셀에 정산 내역을 꼼꼼히 정리하고, 매일 SNS에서 소식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몇 권이 남아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전국의 작고 조용한 서점들 중 몇몇은 너무 조용해서였을까, 책의 안부도 전해주지 않고 사라졌다. 이제 주변에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의 지난 행적을 놀림거리 삼는 친구뿐이다. 오랜만에 다시 열어본 책엔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문장들이 보였다. 빠르게 덮었다. 모든 게 없던 일처럼 지낸다. 


그럼에도 나에게 특별했던 일.

확실이 책을 만들기 이전과 다름을 느낀다.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기분, 확실한 성취감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 작은 화면 속 다른 사람의 일상을 마냥 부러워하며 살지 않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할 수 있고,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 만들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갈 수 있고, 멈추고 싶다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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