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짓것, 책도 혼자 만들었는데.
2년 전, 잠시 동안 나는 작가님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쉬는 몇 개월 동안 책을 만들었다. 입점을 허락해 준 전국의 작고 조용한 서점에 책을 보냈다. 그곳에서 책들이 한 권씩 팔려나갈 때마다 입금 문자가 도착했다. 대체 누가. 대체 왜. 스스로도 '이게 가능하구나' 당황하고 놀라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400권을 넘게 팔아도 실상은 한 달치 월급도 채 안 되는 돈이었지만 기뻤다. 매 순간 고마웠다.
서점에 보내고 남은 책들은 내가 직접 들고 플리마켓을 나갔다. 때마침 독립출판, 독립서점의 열풍이 더해지던 때라 기회가 많았다. 창작자에서 판매자가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는 게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쉽게 평가했고, 이런 데서 파는 것치고 비싸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웃으면서 보냈다. 그런 사람들에겐 나도 책을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서점에서 팔리는 것과 구매자를 눈 앞에서 직접 만나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조심스럽게 책을 열어보던 사람. '다시 올게요'하고 정말로 다시 와준 사람. 이별 얘기뿐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함께 사간 커플. 그리고 한 권이라도 더 팔아주려고 지인을 대동하고 찾아와 준 친구들.
주말을 내내 플리마켓에서 보내도 사실 수익금이라고 할 게 없었다. 몇 권을 겨우 팔고 거기에 돈을 얹어 뒤풀이 술을 마셨다. 함께 책을 팔며 생긴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책 얘기보다 술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이후로 몇 번의 플리마켓은 팔 책도 없으면서 나갔다. 책을 파는 것보다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좋았다.
그때 알게 된 또 다른 몇몇 사람들은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렀는데 그게 어색하면서도, 나 역시 따로 부를 호칭이 없어 그들을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서로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대화하는 우리. 언뜻 보면 새로운 업계로 들어선 듯 보였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아이의 엄마로, 어느 직장의 대리로, 취직을 앞둔 학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코스튬을 착장한 할로윈처럼. 작가라는 역할에 충실하며 그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처음 책을 만들 땐 엑셀에 정산 내역을 꼼꼼히 정리하고, 매일 SNS에서 소식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몇 권이 남아있는 지도 알지 못한다. 전국의 작고 조용한 서점들 중 몇몇은 너무 조용해서였을까, 책의 안부도 전해주지 않고 사라졌다. 이제 주변에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의 지난 행적을 놀림거리 삼는 친구뿐이다. 오랜만에 다시 열어본 책엔 내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낯간지러운 문장들이 보였다. 빠르게 덮었다. 모든 게 없던 일처럼 지낸다.
그럼에도 나에게 특별했던 일.
확실이 책을 만들기 이전과 다름을 느낀다.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기분, 확실한 성취감 그리고 그때 만난 사람들. 작은 화면 속 다른 사람의 일상을 마냥 부러워하며 살지 않게 됐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할 수 있고,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 만들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갈 수 있고, 멈추고 싶다면 언제든 멈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