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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Apr 08. 2024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지 묻는다.

치매센터에 수업을 하러 가는 길에 상왕십리역에 내리면 계단을 타고 나가기전 바닥에 털썩 앉아있는 여자분이 있다. 늘 작은 캐리어 하나를 옆에 두고 털썩 앉아 하릴없이 멍하게 앉아있다. '하루종일 저렇게 앉아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저렇게 살아도 인생이 아쉽거나 아깝지는 않은걸까? 무엇때문에 계단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모습은 나의 현재와 오버랩되었다. 있는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지금의 현실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마음의 번뇌를 걷어낼 힘이 없어 이런저런 생각을 오가며 그저 버티고 있는 모습의 나말이다.


계단을 올라 지상에 이르렀을 때 강렬한 햇빛에 흠칫한 기분이 올라왔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밝음처럼 여겨져 주춤거리며 발을 옮겼다. 아직도 내가 계단 밑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처럼 여겨져 생각이 계속 머무르게 된다. 계속 그 여자분과 내가 오버랩되며 나의 의식이 계단 밑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붙잡으면 그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나에게 손을 내밀어줄 구원의 손길이 있기나 할까? 마냥 기다리며 머물러 있는 것에 이젠 너무 지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내 안에서 길을 찾을 수는 있을까?


치매센터 가기 전 별다방에서 핫초코 한 잔을 마셨다. 커피를 잘 안마시기도 하고 초코가 여러 면에서 충족감을 준다. 우유가 들어있어 배가 든든하고 초코맛의 쌉쌀 달콤한 것도 좋다. 5700원이라는 큰 돈이 들어가는 게 조금 아쉽지만 생크림까지 얹어주면 최고의 디저트를 먹는 기분이다.


생활이 돌아가고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에 싸여 꼼짝 못하고 방구석에 있다가도 이렇게 치매 어르신들을 만나뵈러 되도록 밝고 예쁘게 꾸미고 집을 나섰다. 어르신들께 읽어드릴 그림책도 몇 날을 고민해서 <아카시아 파마>라는 재미난 책을 선정했다. 어린시절 즐겁게 놀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즐거운 기분을 느끼시기를 기대해 본다. 땅따먹기, 고무줄 놀이, 술레잡기, 말타기, 딱지치기를 하며 놀았을 때를 회상하며 잠시 그 순간에 머물러보길 기대해 본다. 그때의 동심과 몸사위에 자신의 마음을 얹어보고 짧은 시간이나마 딱지접기를 하며 즐거우시길 바래본다. 삶은 그렇게 채워지고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 같다. 내 생각들 속에서 오가는 많은 번뇌와 욕심들이 나를 그저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게 하는 대신 손으로 만들어내고 많은 사람의 염원이 엮어내는 실제는 이 시간들을 채워준다.


꼼짝 못하는 마음을 털고 일어서게 해줄 힘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지금의 내 생각을 정확히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 다음에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가기에 맞는 주문을 외울 수 있을 테니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를 벗어난다면 털썩 주저앉아있던 내 꼴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를 알게 될 것이다. 막연하게 좋은 상태, 평안한 상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하고, 바라는 것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니 그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잔뜩 겁내고 있었던 시간이 지나가고 진실을 바로보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내가 자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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