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윤상 Aug 18. 2024

위빠사나명상 체험기

보은 자비사에서

#위빠사나명상#있는그대로바라보기#보는마음#촛점맞추기#생각뒤의욕구바라보기


하루 종일 집중해서 위빠사나 명상을 하는 경험을 하였다. 아름다운 사찰에서 좋은 사람들과 조용히 내면으로 들어가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우리를 이끌어주신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위빠사나명상이란 부드러운 주의로 나에게 일어나는 생각, 감정, 의도를 알아차리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라 하였다. 나에게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거나 여러 감각이 반응하는 것 등을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에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어떤 통찰이 올라오기도 하고 알지 못했던 내면을 만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명상은 좌선과 경행을 함께 하였다.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천천히 걸으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명상을 할 수도 있다. 스승님은 더 편안한 명상을 허락해 주셨는데 밖으로 나가 법당 뒤의 의자에 앉아 머무를 수 있게도 해주셨다. 작은 사찰의 법당에 11명의 도반들과 함께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았다. 고요하고 편안한 침묵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런데 나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를 가지는 순간 생각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감각은 멍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동안 매미소리를 들으며 긴장된 상태로 머물렀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일어나 법당을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한지가 발라진 문앞에 서서 문살을 바라보고 머물렀다. 문살의 작은 네모를 바라보다 내가 머물 수 있는 편한 자리 하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아무 근심이 없고 슬픔이 없는 위로를 주는 자리가 너무도 소원해졌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많은 문살의 네모들 속에서도 머물 수 있는 편안한 공간 하나가 없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넌 의식이야'라는 말이 올라왔다. 내가 의식이라는 것은 예전에도 알고 있었던 막연한 통찰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그 말이 올라와 나를 위로하였다. 나의 본질이 의식이라는 깨달음은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을 자리 하나를 찾을 필요가 없음을 말해주었다.


나는 나 자체로 편안한 자리이고 사랑의 존재이며 부족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의식 자체이기에 외롭지 않은 존재이고 주는 사랑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나의 자아심이 그것을 가리고 내가 부족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외로움은 인정욕구이자 욕망의 한 모습이었다. 나의 본질로 바라보니 나는 세상과 하나이고 세상은 나와 하나였다. 내가 사랑을 받아야 채워질 것 같았던 마음은 나의 본질을 몰랐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이 나의 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명상을 끝냈을 때  마음은 평안해졌다. 따뜻한 법당의 분위기와 도반들의 사랑스러운 눈빛들, 작은 깨달음으로 나는 다른 세계로 간 것만 같았다. 나의 우주가 바뀌어졌을 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동안 본질을 잊고 헤매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본질을 만나려면 끝없이 알아차림하며 때를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동안 오래된 습관과 상처들과 고정관념들이 사슬이 되어 나를 부족한 존재이자 비루한 존재로 자꾸 느껴지게 하였다. 상처들은 자존감을 떨어트리고 나를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로 느끼게 하였다.


다음날 다시 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나는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걸까'하는 생각을 하였다.  긴 인생의 여정이 빠르게 스쳐갔다. 나의 소명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여기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생 여정에서 지난한 시간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자아심의 범람이 일으킨 많은 고난과 어리석음의 시간들이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겸손하게 부처님 앞에 앉게 한 것이 아니었을까. 법당에는 준재보살님이 앉아 계셨다. 준재보살님은 세 개의 눈과 18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세 개의 눈은 중생의 미혹과 죄업과 괴로움을 바르게 보고 18개의 팔로 남김없이 제거해 청정한 마음을 갖게 한다는 어머니같은 부처의 모습이다.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바오로 사도의 '모든 이의 모든 것'이라는 말씀이 올라왔다.  나의 소명은 그렇게 모든 이에게 그들에게 맞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나 자신의 인생도 건사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의 본질이 의식이며 온전하다는 성찰이 다른 생각을 하게 한 것이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랑이 내 안에 넘쳐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스스로에게 허락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기소침한 마음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먼저 관대하여야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위빠사나명상의 마무리에 스승님께서는 짧은 시간의 수행을 통해 얻은 것이 비록 작지만 그것을 마음의 씨앗으로 여겨 물 주고 돌봐주기를 계속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 생긴대로 살지 않기 위해 수행을 하고 있기에 자신을 늘 비우라고 하셨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붙잡지 않고 보내주기를 계속한다면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성장하고 넘칠 때 나눔의 길로 나아가라고 하시며 그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하셨다. 우주가 우리의 선함을 알고 함께 해줄 것이라고.


이번 명상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가 물질의 풍요가 있거나 어떤 사람의 인정이 있다고 해서 풍요로워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받아야 채워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현실로 돌아와 슬픔이 올라오고 결핍을 다시 느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기에 알아차림을 통해 나의 때를  끝없이 씻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나의 안과 밖이 같아지게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행을 통해 나의 내면의 신성함을 깨운다면 안과 밖은 같아지고 평화 안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작가의 이전글 절을 1000번 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