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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Sep 09. 2024

의도를 세우는 삶

절명상을 마치며

일주일에 한 번 1000번씩 10주간에 거쳐 절명상을 마쳤다. 만 배를 마친 후 몸은 아프고 힘들었지만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다. 무엇하러 더운 여름에 절을 만 번이나 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막연한 답을 할 것이다. 나를 넘어서고 싶었노라고. 내 한계가 넌덜머리가 났었기에 그걸 넘어서고 싶었노라고 말이다.


절명상을 하는 동안 스님께서 차담을 하며 조언을 해주셨기에 한 주 한 주가 넘어갈 때마다 얻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신세한탄이나 기원하는 것들을 부처님과 예수님께 청하였다. 그러다 누구를 탓하기도 하고 자기연민에 서글프기도 했다. 그리고 나선 우리 모두가 부처이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 문제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명상의 말미에 나는 감사의 절을 무수히 하였다. 우수마바리같은 마음의 때를 벗겨내고 보니 이렇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감사한 것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지를 막연하나마 알 수 있었다.


한바탕 절을 마쳤다고 안도하고 있을 때 함께했던 동료가 100일을 채우고 싶다며 다시 천 배를 하기 시작했다. 난감할 일이었다. 이젠 조금 깨달은 것도 있고, 조금 힐링도 되었고, 조금 희망도 생겼으니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절을 하겠다니. 절명상을 마칠 때 스님께서 나에게 몇 번이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해보면 좋을텐데." '무엇이 좋아진다는 말씀이실까? 사람꼴이 더 나아진다는 말씀이셨을까? 아니면 마음의 때가 더 벗겨진다는 것이었을까?...'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도 따라 가게 되었다.


다시 찾은 법당에서 나는 1000배를 채우기엔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릎이 아파오지 않은가. 그리고 죽자 절을 한다고 뭐가 크게 변하는 건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천천히 절을 하며 정성을 기울이자라는 생각으로 절을 드리니 300배는 힘들지 않게 하였다. 이제 그만 할까? 내일을 위해 체력을 아끼는 차원에서 이쯤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마치기엔 무언가 미진하고 뒷머리가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300배를 더 마치고 나니 스님께서 차를 마시러 오라고 하셨다.


스님께 여차여차 저차저차해서 600배를 했다고 말씀드리니 처음에 적당히 300배만 하려고 했던 나는 누구고, 미진한 생각이 들어 300배를 더하려고 한 나는 누구인지 성찰할 기회를 놓쳤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리고 그게 내가 사는 모양새일거라며 일침을 놓으신다. 무언가 띵하게 머리를 맞은듯 했다. 명확하게 의도를 갖지 못하고 그저 흐르는대로 따라간 것이 결국 늘 살아가는 내 삶의 태도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변명하고 미루고 내 일을 남일처럼 대하는 내 모습이 오랜 시간 형성되어진 견고한 나라는 것에 절망감이 올라왔다. 추상적인 나는 이런저런 한계를 넘어설듯이 보였지만 실상 만나게 된 나의 모습은 참으로 궁색하였다. '나는 자신없어. 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약해.' 내 입에서는 변명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모양 그 꼴의 나를 연민하는 눈물이 흘렀다. 만 배 절명상이 도루묵이 되어버리는 것일까?


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나를 견고한 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실패한 아버지의 삶이 나에게 학습되어 있다는 변명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나를 연민한다. 나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회부적응자라는 자기비판을 받아들인다. 나는 내가 무엇을 이룰 힘이 있을까하며 불안해 한다. 나는 도망가고 싶고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런 내가 진짜 나일까? 그런 나를 붙잡고 살아야 할까? 그것을 넘어서는 나를 만나고자 하지 않았던가. 스님께서는 그런 약하고 고정된 나를 벗어나려면 다른 길로 과감히 가라고 하셨다. 그걸 알었으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스스로가 나의 약함과 한계를 여실히 보았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실 나의 본모습이 아닌 덧붙여진 것이라 생각한다면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을 거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그런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얼까? 한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다 의도를 세우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의지를 부리지는 않되 고정관념이나 패배적인 생각들이 끼어들지 않도록 먼저 좋은 의도를 세우는 것이다. 절을 하려면 절을 하려는 의도가 먼저 정확한 것이 좋겠다. 하루를 사는 데에도 좋은 의도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잔잔하고 진지한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편하게 작동하는 길로 의도를 세우는 것이다. 삶의 주도권을 막연한 나의 습에 맡기고 흔들리고 있었다면 이제 힘을 되찾아야겠다. 그렇게 과거에 끌려가지 않고 지금 의도에 맞는 매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참된 나를 만나는 길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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