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리나를 읽으며
#안나카레리나 # 톨스토이 #내면의집 #각자의성정 # 오래된감정 #진정한자유 #풀어주고놓아버리기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있다. 민음사의 세 권짜리 완결판 중 첫 권을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가 의도하는 큰 줄기의 사상과 등장인물 마다의 성장과정을 글로 쓰는 것도 좋겠지만, 아직 이야기를 읽고 있는 중에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등장인물 마다의 기본 성장의 서사는 아는 단계이다. 그리고 톨스토이가 그려내는 한 명 한 명의 인물의 감정묘사에 경탄하고 있다. 각자 태어난 집안이나 성장의 시간 속에서 얻게 된 가치관이 다르니 경험하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안나는 가장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녀의 남편은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지만, 안나는그런 안정된 삶 안에 있는 미묘한 위선과 메마름에 반항하게 된다. 그녀는 허위의식 가득한 사교계와 남편을 떠나가지만 자신의 잘못 또한 알기에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파괴되어 간다.
또 한 명의 사랑스런 여인인 키티가 있다. 그녀는 사랑을 하기 위한 깊은 안목을 갖지않고 쉽게 외면의 포장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착각을 했다. 자신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평가로는 세련된 남자인 브론스키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신에게 진심이었던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마음을 빼앗겨 떠나가고 무엇이 중요한지 방향을 잃어버린 키티는 상심한다.
안나의 오빠와 새언니와의 어쩔 수 없이 엮여있는 부부관계도 흥미롭고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한때 서로를 사랑하였지만 세월 속 변해버린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씁쓸한 현실에 놓여있다. 또 안나의 연인 브론스키와 남편인 카레닌의 안나에 대한 마음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두 남자 모두 안나를 대하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아픔을 얻게 되며 인간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고귀함을 잃고 싶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배려하려하고 행복한 가정을 열망했던 레빈은 자신을 대면하여 키티에 대한 자신의 진실함을 깨닫는 고난의 시간이 남아있다.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통받는 시간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의 감정들이 내 안에서 공감을 일으키며 나를 성찰하게 한다. 내 안에는 거짓평화와 의존성을 깨고 싶은 열망을 가진 안나가 있었고, 자신이 믿는 것을 진짜라고 믿고 싶었던 어리석은 순수함의 키티가 있었으며, 열정을 따른 자신의 욕망이 제일 중요한 브론스키가 있었고, 도도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면서도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레빈이 있었다. 그리고 규범과 지식으로 무장해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카레닌이 있었다. 그들은 상반되거나 다른 인간들이 아닌 내 안에 있는 분신들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는 이 모든 감정을 공감하지 않고 많은 부분 내면에 가두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굳건한 가치관과 고정관념이 감정들이 발현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 그래서 해결하지 못한 묵은 감정을 다시 느끼는 일이 생기는가 보다. 묻어두었던 감정의 에너지가 내면의 집에서 나와 드러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할 일을 다하고 떠나가고 싶어한다. 풀려나온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활동하고 에너지를 누르고 있던 각인을 지우고 만들어 둔 벽을 허물고 싶어하는 것이다.
외부의 감각을 경험하기 싫어하는 마음의 저항은 내 안의 내면의 집이 열린 공간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오히려 내면의 집은 길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얻은 가치관과 세상의 기준을 수용한 도덕률, 과거 경험에 대한 상처들로 견고하게 벽을 쌓은 요새같은 곳이다. 나를 지키겠다는 강력한 마음은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구속이 되어버려 나는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면서도 요새같은 마음 속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신세다.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공감되고 아름다운 이유는 그들이 각자의 성정에 맞는 삶을 치열하게 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나에게 어울리는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다. 내가 가두고 있었던 감정들을 용기내어 대면할 시기가 오고 있다. 이미 변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다. 나의 단단한 인위성에 항복하지 않고 자연으로 나아간다면 태양이 환히 비치는 내면의 집을 갖게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을 갖는 이유이다.
마크 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