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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Jul 10. 2021

<나는 나>캐럴 피어슨

칼 융 원형의 새로운 해석. 내 안의 심리적 원형을 만나다

#6가지원형#고아원형#방랑자원형#전사원형#이타주의자원형#순수주의자원형#마법사원형#영웅의여행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삶이 나에게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그 물음에 나의 해답을 제시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주는 답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 칼 융

융의 말처럼 삶은 나의 선택의 연속이고 나는 내 인생의 대본을 쓰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한데 캐럴 피어슨은 크게 6가지 원형을 통해 나를 움직이는 힘이 각자의 무의식 세계 뿐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되어진 공통되는 집단적 심리원형에 기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6가지 원형을 알아 보자면, 버려진 듯한 심리적 추방자인 고아 원형, 이상적인 세계로 떠나고 싶어하는 방랑자 원형,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전사 원형,  세상에 주고 싶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타주의자 원형, 시련을 거쳐 세상과 타인을 신뢰하게 된 순수주의자 원형,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킬 힘을 갖는 마법사 원형이다.


어린시절의 나는 세상은 안전한 곳이고 부모님의 사랑과 신의 존재가 나를 호해주고 있음을 믿는 순수주의자 원형의 상태였다. 모든 것은 평화롭고 안전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가족들은 풍금을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으며, 클래식음악과 아바의 노래를 듣고 어린이 동요를 외우다시피 들었었다. 여름이면 바닷가에 가서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우리는 해수욕을 하고 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순수함의 세상이 와장창 무너진 건 아빠가 사업을 벌리고 뒷수습을 못하고 부도를 내면서 부터였다.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 있었지만 동생들은 빚쟁이의 독촉과 괴롭힘까지 받아야했고, 엄마는 괴로움에 술을 계속 마셨다. 직접 함께 하지 않았어도 마음의 괴로움은 계속 되었기에 갈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심하게 고아원형에 경도되어 있었다. 아무도 의지할 존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이겨낼 힘은 없었기에 무기력한 마음이 커져갔다.


한데 엄마는 나에게 기대가 커서 가난하고 힘든 가정을 어떻게 일으켜야 한다는 말대신 좋은 대학으로 가서 출세하기를 바라셨다. 의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엄마였지만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는 못했다. 부모가 원하는 사회적 명예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건 오랫동안 부모님이 나에게 심어 놓은 무의식 세계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했다. 부모님도 나도 현실감은 없었다. 엄마는 아빠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빠는 이른 나이에 무력한 사람이 되었고 우리에게 패배의식을 심어주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전사로서의 삶을 살려 했지만 오랫동안 무의식에 심어졌던 전사원형은 힘을 잃어 겁을 먹은 상태였다. 억지로 전사원형을 일으키려 했지만 내면의 힘겨움은 결국 나를 무릎 꿇게 했다.


구원자에 대한 열망은 남편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켰을지 모른다. 나는 지쳐 있었고 전사적 의욕을 상실했기에 부디 안전한 둥지에 머물고 싶다는 열망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의 욕구나 본성과는 거리가  가정생활은 여전히 고단한 세계였다. 영웅이기를 포기하고 도망을 쳤지만 다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온통 내가 주인공이었던 세상에서 추방되어 아이 둘과 남편을 위해야 하는 희생의 장으로  것이었다. 아이 둘을 기르면서 나에게 모성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온통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중심에 두지 않는  어떤 삶도 상상할  없었다.  마음에 있는 고아 원형이 세상을 두렵게 바라보게 했으며 나를 불쌍하게 여겼기에 나는 세상에 발을 내딛지 못했고, 두려운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켜내려 했고, 자기연민의 확장으로 아이들에게 집착했다. 반면 어찌보면 만을 중요시 했던 내가 이타주의 원형을 학습하게  시간이었다. 강제로 주어진 상황에 발현된 원형이었지만 어쩌면 나의 내면은 영적 성숙을 위해 이타주의 원형을 학습시켰는지도 모른다.


캐럴 피어슨은 안전하고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도 그것을 채워  안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웅은 떠나야만 하며 내가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면 삶이 결국 나를 떠밀 것이라 말했다. 그건 맞는 말이다. 두려움에 떨며 머물고 싶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결국 보호받지 못했고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나를 떠밀었다. 어쩌면 나의 내면은 새로운 여행을 바라고 있었고 세상에 던져지기를 갈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무모하게 학원사업을 시작했다. 시작은 물론 여동생이 급히 외국을 떠나서 학원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이나 사업성은 고려하지 않고 욕망이 원하는 대로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영웅의 여행은 고난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학원을 운영하는 4년 동안 남편은 실직을 했다. 남편은 회사가 법정관리에 이른 책임으로 자진해서 나왔고 정신적으로 멘붕상태였던 것 같다. 그는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불안한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도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지만 나로서는 운영이 잘 안되는 학원을 닫을 수가 없었다. 부모들이 모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 최대의 고난기에 나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순수주의자 원형을 찾았다. 어릴 적의 천진한 믿음이 아닌 실존적 상황에서 신을 만나게 된 것이다. 두려움과 걱정들에 떨면서 신을 찾았을 때, 나는 자비로운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극한의 힘겨움을 느낀 다음 순간에도 내가 살아있고 건재할 수 있음을 알게 해주셨다.


나는 용기를 되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롭게 자신의 일을 시작하는 남편에게 힘을 보태고 싶었다. 남편이 정신을 차려 사업을 시작하는 시점에 내가 하는 노동이 기도가 되어 올라가리라는 확신으로 수녀원 주방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일 년의 시간을 채워 일하겠다 결심하였고 내가 버티는 힘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몸을 단련시켰다.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성찰하게 되었다. 방랑자 원형과 전사 원형이 힘을 되찾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진짜 나를 찾고 싶다는 열망이 나에게 새로운 여행길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제 고아단계에서 나를 구원해 줄 구원자를 기다리는 것을 벗어나 나 스스로가 구원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나는 일 년 동안 노동을 한 몸이었고 갈 길을 찾은 몸이었다. 그러니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낼 힘도 있지 않을까하는 자신감이 올라 왔다. 자서전을 쓰게 된 것은 변화의 전환점을 준 것이었다. 자서전을 쓰면서 가련한 내면아이를 만나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자기연민의 마음을 버리고 피해자의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나를 흔들고 있던 생각들이 벗어나야할 굴레였으며 나의 길을 가로막는 늪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웅은 자신의 시련에 주저 앉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앞날을 위해서라도 낡은 감정들은 버려야 한다고 나를 다독이며 부모님에 대한 미움과 분노, 나 자신에 대한 후회와 자책,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의 마음들, 남편에 대한 원망의 마음들을 하나씩 버려갔다. 나는 방랑자의 길을 떠났지만 모험을 하고 나를 찾는다면 행복한 귀환을 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자서전을 쓰고   자서전 쓰기를 지도하며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나를 찾는 필업을 어찌 짧은 시간에 이룰  있을까. 나의 자아성취를 이루는 시간은 아직도  여정의 자락에 있다. 나는  자신과도 계속 화해하고 있다. 터무니없이  자신에게 바라는 많은 기대들을 반성하기도 하고  이유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순수주의자 원형을 따르는 나에게 점점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삶을 주도하고 책임질 힘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고 삶을 너무 순응적으로 보아 수동적으로 기다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마법사의 원형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나에게 전사원형을 더 발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나에게 활력 넘치는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직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알게된 사실은 나의 그림자와 화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한 기대를 높이보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주체성을 얻는데 방해요소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외부의 싫은 존재를 어떻게 품어야하는지 스승님께 말했을 때 이런 답을 주셨다. 자신이 외부에서 싫어하는 면은 사실 내 안의 수용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그 말씀을 곱씹어 보니 내 안의 열등의식이 외부로 투사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를 인정하지 않고 내부의 비판자에게 수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타인을 사랑하게 되며 내 삶의 주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마법사의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신의 사랑과 나의 내면이 빚어내는 조화로운 만남은 내가 과한 전사를 발현시키지 않아도 가장 좋은 자리로 나를 데려가 줄 것이다. 내가 그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는다. 영웅의 여행이 끝나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면 그때의 나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며 사회와 화합할 수 있는 모습을 갖게 될 것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나의 원형이 발동하는 지점들을 이해했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도 얻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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