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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Jul 29. 2021

그림책 <아나톨의 작은 냄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에서 벗어나기

#아나톨의작은냄비#나의십자가#나는나#영혼의친구#그림자끌어안기#상처입은치유자


아나톨에겐 항상 끌고 다녀야 하는 작은 냄비가 있었다. 그 냄비는 아나톨이 평범한 사람으로 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나톨은 친절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답답한 아나톨이 화를 내고 분노를 표현하게 될 때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멀어지게 된다. 아나톨은 절망한다. 그래서 숨어버리려 냄비로 얼굴을 덮어 씌우고 냄비 안에 머무른다. 사람들은 그를 잊어갔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주머니는 아나톨의 냄비를 톡톡 두드려준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작은 냄비가 있다며 냄비를 가지고도 행복할 길을 가르쳐준다. 아주머니는 아나톨이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도 된다는걸 가르쳐주었고, 냄비를 가지고 있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아나톨의 작은 냄비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서 아나톨이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살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의 끝에서 아나톨은 행복해 보인다. 그 아이에겐 여전히 작은 냄비가 달그럭거렸고 그 아이는 사실 그대로였지만 무언가가 변해있었다.


처음에 이야기를 스토리를 따라 그냥 읽었을 때는 크게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없었다. 아나톨에게 말하기 어려운 힘겨움이나 장애가 있었을까하는 생각 정도를 하였다. 책을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을 때 나는 아나톨이 되어 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의 귀엽고 작은 아나톨의 모습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나도 그랬는데... 나도 사랑받고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냄비를 아나톨이 끌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 사랑스런 아이에게 버거운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아나톨이 겪어야 하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들과 좌절의 모습은 나의 시간과 오버랩되었다.


나의 냄비는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루지 못해 좌절하고 내 인생은 실패라고 규정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생의 패배자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자 정말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던 것 같다. 한데 그 마음에 눌리게 된 마음의 근저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오는 부끄러움과 패배의식의 학습이 있었다.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부도를 냈으며 그 빚을 끝내 갚을 능력도 없다는 것이 나의 패배의식을 더 강하게 몰아부쳤다. 죄의식과 부끄러움으로 나는 패배자가 되어야한다는 당위를 가지게 되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냄비 안에 나를 숨기고 도망가고만 싶었다. 외부 환경이 변해갔지만 내 마음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시간이 흘러갔다. 무얼 붙들고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원론적인 물음만을 계속하며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나는 끝끝내 나에게 고립되어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나의 냄비를 두둘겨 준 평범하지 않은 아주머니는 어쩌면 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알고 있는 분이시기에 내가 냄비 안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극단의 상황도 알고 계셨다. 극단의 상황이 온 것은 그만큼 나의 완고함이 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동생을 도와야한다는 이유와 남편의 실직으로 생긴 빈 자리를 채워야한다는 이유로 학원 운영을 시작했고 세상에 발을 딛게 되었다. 부족한 판단으로 일을 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하는 긴박한 시간 동안 내 틀로만 보았던 세상은 다르게 와 닿기 시작했다. 그리고 버겁기만 했던 부모님에 대한 미움들과 나에 대한 자책의 마음을 조금씩 용서하게 되었다. 신께서 나에게 냄비를 담으라고 만들어 준 가방은 포용의 마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것은 결국 사람들을 사랑할 시작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냄비는 여전히 덜그럭거리고 어쩔 때 나는 냄비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나에게나 다른 이에게 머물던 너그러운 마음이 무너져 분기탱천하던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금 달라진 것은 나의 냄비를 안아주려 마음을 먹고 바로 보려 하는 것이다. 어쩌면 패배의식에 휩쌓여 있던 나의 진짜 속마음은 명예를 바라거나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부족한 나를 붙잡고 있는 건 욕망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었을까.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닌 욕망에 스크레치를 입은 것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나의 냄비-부끄러움과 패배의식이 나의 선한 본질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냄비가 나를 힘들게 하였지만 나에게 더 깊이 들어가게 해주고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어쩌면 나의 냄비는 부끄러움과 패배의식을 붙잡았던 욕망의 자락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여전히 냄비가 가방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나는 먼저 해야 할 일을 바라보는 내가 되어보려 한다. 냄비가 더 좋은 인간이 되길 바라는 신의 사랑의 표현이었다면 나에게 주어진 소명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이다.. 약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알고, 그 안의 욕망을 알고나니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홀가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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