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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Jul 29. 2021

머물 수 있는 힘, 떠날 수 있는 용기

진정 자유롭다면 ~ 모두 가능할 것이다.

결혼하고 연년생 아이들을 기르면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도데체 무얼하고 있는 걸까하는 생각이 날마다 들었고 나와 관계없는 일에 노예처럼 묶여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다. 물론 간간히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껏 마음에 품었던 많은 꿈들을 놓아 버리고 안락한 가정에 안주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마음은 평화롭지 않고 공허한 상태였다.


젊은시절 품었던 꿈은 모두 멀어졌기에 잃어버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컸고 새로운 꿈을 찾기에 나는 무기력했다. 사실 우울증 상태였다. 우울한 사람이 어디로 떠날 용기는 없다. 현상유지에 온 힘을 바치고 있는 것도 힘이 들기에. 하지만 머물러 있는 것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시절 나는 계속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유롭고 싶다고 반복해서 생각했었다. 외부 환경이 나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환경이 아닌 내 자신의 내부가 답답한 틀 안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가졌다면 우울의 시간을 빨리 벗어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결할 힘이 없는 나로서는 꼬리를 물려고 하는 강아지처럼 뱅글뱅글 같은 생각을 하며 답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를 포기한채로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두 딸아이를 행복하게 해주어야한다는 마음이 내 삶을 이끈 가장 중요한 모토였다. 나의 무력감을 이길 수 있었다면 가족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줄 수있어 좋았겠지만 나는 아주 조금씩 나를 다독이며 나아갈 뿐이었다. 사람이 유리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안의 내면의 핵이 무너지면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야 드는 생각은 내가 붙잡고 있던 가치관이나 도덕관, 이상향은 정말 좁은 시야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부정되고 무너졌던 상황은 오히려 내 그릇을 키우는 귀한 장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핑계는 어느 시기까지는 가능했다. 아이들의 약함이 나에게 머물 자리를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그런 변명을 계속 하면서 나 자신과 만나는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도망다니며 나의 삶을 계속 미루고 있는 상태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어느 시점엔가는 답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머물러 있음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겐 어쩔 수 없는 능력의 한계가 있고 나를 옥죄이는 외부환경-연년생을 키우는-이 있노라고 계속 변명거리를 만들면서 말이다.


나와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은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 자서전 쓰기를 하면서였다. 자서전을 쓰면서 나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용서하기 힘들었던 과거와 화해하고, 내가 진심 바라는 건 무엇인지 묻게 되었다. 그런 작업 속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만이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 없이 나의 진정한 존립은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하는지 답을 못내고 긴 세월을 보낸 후 알게 된 진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이렇게 한 발을 내딛으니 사는 것의 답을 낼 수도 있었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변명을 붙이고 머물러 있을 때는 다른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 하늘과 땅 사이의 간격처럼 느껴졌지만, 막상 나에게 새로움과 낯섬, 다른 세계를 허용하자 곧바로 세상은 바뀌었다. 외부 환경이 아닌 나의 생각을 건너가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허용하는 것이 모든 길을 여는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허용하면 나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훌쩍 금새 갈 수 있음에도 내가 가능성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 어디로 떠나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묻는다면 특별히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현실에 머물고 있는 단단한 마음일까 아니면 오랜 시간 굳어진 습관같은 것일까? 낯선 것들을 만날 수 있는 용기있는 마음은 아니지 않을까? 그저 안도하는 마음같은 게 아닐까하는 의심의 마음이 올라온다.


하지만 이제 내가 어디로 떠나고자 한다면 못 떠날 이유는 없다는 걸 안다. 지금의 나는 머무는 것이 힘들지 않고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설령 나를 붙잡는 일들이 생겨도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고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도전하고자 한다. 어느 순간에도 나는 똑같은 나일 것이며, 나는 스스로에게 자유로울 권리를 허락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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