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는 왜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했나?
계속 허리가 아팠다. 허리 통증으로 자면서도 힘들었다. 왜 그런지는 생각도 못하고 끙끙댔다. 오늘 조상님을 위한 차례를 대신하는 추석 미사에 참여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 반듯하게 서 보려 하니 내 자세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게 중심이랄까 힘이 모이는 자리가 허리 뒤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지하는 생각으로 살펴보니 내가 배를 내밀고 있기에 뒤쪽 허리로 힘이 몰리고 있었다.
얼른 몸을 반듯이 세우고 배와 다리에 힘을 주어 보았다. 몸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동안 너무 책상 앞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보니 허리는 구부정한 모양에 거북목이 되어 앞으로 쏠렸고 배는 많이 나온 모양새가 되었다. 운동도 안해서 살도 많이 찌기도 했다. 아주 짧은 순간의 성찰이었지만 내 몸을 돌보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다리에 힘을 정확히 주고 반듯하게 선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나의 경제적 자립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재능과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성찰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본질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조상님을 만나는 자리엔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구부정한 내 몸이 허리를 아프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로 선 나를 생각하게 되었고, 당당한 인간으로서 바로 선 나를 생각하자 경제적 자립을 도와주시라는 기도로 이어졌다.
내가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작은 결실을 맺는 단계에 이르기는 한 것일까? 별반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으면서 쉽게 열매를 바라고 욕심을 내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은 나에게 반드시 얻고 싶은 바람이자 인생의 과제이다. 큰 압박이기도 하다.
동안 단순노동이나 스스로에게 와 닿지 않는 일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삶에 덤벼드는 모양새에서 멀어지게 하고 스스로의 이념에 갇히게 만든 걸까? 스스로의 자아상이 높아서 였을까? 아니면 나에게 경제적인 능력은 없다는 마음이 컸던 것일까?
난 오랫동안 내가 어떤 패배의식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되고자 했던 꿈을 잃었다 생각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크게 나를 차지했고 그 외의 일은 시시하게 여겨졌다. 무얼 해도 진짜가 아닌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라고 믿었던 것도 지위나 모양새가 아닌 본질로 만나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걸렸긴 했지만 이제는 과거 내가 붙들고 있던 것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안다.
거짓 꿈을 버리자고 마음 먹었음에도 여전히 두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자서전을 쓰면서 내 안에 있는 부모의 모습을 많이 느꼈다.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아버지의 인생와 그런 아버지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인생이 인생의 원형처럼 나에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패배의식과 함께 학습되어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작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떠나시자 마음 속 버거움도 많이 정리가 되고 나를 떠나가 주었다. 언제까지 아버지의 그림자를 변명거리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가정경제를 제대로 안정시키지 못한 건 남편과 나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 남편이나 나나 시행착오가 컸다. 과신했던 부분도 있었고 숙고하지 않고 흘러가듯 살며 제대로 챙기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남편대로 일에 매달려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모래 위에 지어진 집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 산다 했지만 실속없이 시간을 보낸 것이다. 각자의 버거움을 안고 각자의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원망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여전히 있다. 간혹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치 다른 세계를 산 것처럼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를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갈 길을 모르고 헤매었던 것 같다. 동안 무언가를 많이 도모하고 배우려 했었다. 경제 활동만이 성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면 성장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삶을 계획하고 차근차근 해내는 것을 통해 경제적인 능력까지 연결시키는 걸 하지 못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저서를 통해 여성의 자립을 이야기한다. 여류 문인의 글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낭만적이지 않고 치열한 자기 성찰과 성장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작가는 영국의 여류 문인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여류문인들의 작품이 적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유를 찾고 있다. 그녀는 그 이유로 관습의 억압도 있지만 여성이 자기만의 방과 경제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얼마나 현실적인 결론인가. 나도 경제력을 얻는 것에서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자립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 자립을 한다는 것은 어떤 모양새여야 할까?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덤벼드는 게 용기있는 행동일까? 아니면 이제껏 나를 붙잡고 있었던 문제의식에 답을 내기 위한 끌리는 일을 해야 할까? 글을 쓰거나 자서전 수업을 하는 걸로는 규칙적인 급여와는 비교도 안되는 불안정한 돈밖에 벌 수가 없는데 그걸 붙잡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계속 이런 고민을 해 왔다. 가정 경제를 함께 책임져야한다는 마음이 계속 고민하게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경제적 능력을 가져야 한다며 압박하기 보다는 나의 욕망에 솔직한 게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결론을 내게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에 정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싶다. 어쩌면 이 결론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우수마바리들을 끌어 안고 나를 시험해보고 있었던 것 같다. 쓸데없이 번뇌하는 습관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바치고 있으니 그것으로 결실이 온다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것이 돈을 벌어들이는 가시적인 모양새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조급한 마음이나 압박감을 벗어나 지혜로운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경제적인 자립이 나를 더 당당하게 해줄거라는 마음을 일단 내려놓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게된다. 가족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자격지심의 마음 이전에 진짜 내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참된 자립을 가져다 줄 것임을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