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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Oct 08. 2021

사이에서 길을 찾다

중도의 길, 애매함과 모호함 선택하기

 #중도의 길 #에고 버리기 #애매함과 모호함 선택하기 #변화는 인간과 자연의법칙 #생명력과 가능성의 공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면 늘상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하니 마음은 이래저래 불만스러워지고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제  모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후, 나는 사탕을 우적거리며  개나 먹었고, 그것도 모자라 애들이 숨겨 놓은 과자를 뒤져서 와구와구 먹어댔다.    없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늦은 새벽에야 잠들  있었다.


어린시절 불안정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두려운 마음의 씨앗이 생겨난 것 같다. 그래서 늘 안전지대로 보이는 A와 불안한 세상인 B가 분류되었고, 내가 원하는 A의 모양새가 아닌 다른 식으로 일이 전개되거나 A의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혼란과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범주에서 계획하고 있었던 일이 아닌 영역으로 벗어나는 것같아 혼란감을 느꼈다.


나를 잃어버린 것같은 기분과 함께 막연한 미래에 대한 걱정까지 더해져 가슴이 울렁거리며 숨쉬기가 답답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는 애매하고 모호한 상태를 느꼈다. 나의 경계를 얼른 되찾고 싶고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말자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던 마음부터가 호기로운 기백이나 의욕넘치는 욕구는 아니었다. 내가 아는 영역이 아닌 막연한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부터가 내어맡기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이 몰려왔고 이런저런 변명을 붙여 시작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취소를 결정한 후 주관하시는 분께서 개인적으로 권유전화를 했다. 왠지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모양새를 따르게 되었다.


기준점을 잃고 알지 못하는 영역에 있는 것만 같은 나의 상태는 불교에서의 무아상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알지 못하고 무엇도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의 핵심을 잃은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외롭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실체가 없는 무아상태를 존재의 진리로 본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단단한 자리가 오히려 진리와는 거리가 먼 에고일 뿐이라 보기 때문이다. 에고가 차지하는 자리가 비어졌을 때 비어있는 그 자리에는 내면의 진리가 올라오고 깨어나 빛을 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자아가 만들어내는 익숙한 스토리와 멀어져 안도감을 잃은 무아의 상태를 막연하나마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나를 잃어버린듯한 마음을 어떻게 해야 진정시킬 수 있을까 차분히 들여다 보았다. 나는 늘상 경험과 판단으로 세상 일을 만나왔다. 그러니 나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완고한 판단을 했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낀 영역으로만 들어오려 했기에 내면의 안내자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조금은 나와의 거리두기가 되어진 것인지 스스로에게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마음의 느낌을 따라가자고 다독여 보았다.


페마 초드론은 티벳불교 초감 트룽파의 수제자인 미국의 여성 승려다. 그녀는 <모든 것이 산산히 무너질 때>에서 중도의 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옳고 그름과 경계에서 벗어난 중도의 길에 무한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나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의 법칙대로의 불확실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옳거나 그르다고 하지 않고, 내 안의 옳고 그름을 채우려 하지 않으며, 불확실성의 한복판에  머무를 수만 있다면 우리 안의 지혜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고 온전함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의지를 믿고 명확성에 머물고 싶다고 하는 마음이 나를 더 큰 지혜의 길에서 벗어나 제자리만을 맴돌게 했을지 모른다. 그런 한계가 있기에 내가 크게 변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많은 가능성을 두고 결정하기엔 나이가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가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하지만, 사이의 공간 아니 어쩌면 허공으로 나를 등떠미는 것이 더 온전한 세상으로 가는 것이라는 마음을 가져본다. 그건 페마 초드론이나 많은 영성가들의 가르침을 통해 내가 배운 면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내가 그리 해보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는 영역에 머물며 막연하고 모호한 것들에 나를 내맡겨 본다는 것이 얼마나 겁나는 일인지 절감하고 있다. 한데 내면은 막연함에 몸을 맡긴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하고 나에게 일어나는 복잡한 심정이나 두려움을 내려 놓으려 한다. 습관적인 생각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으려 한다. 익숙함으로 나를 쉽게 몰아넣지 않고 잠시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머물러 보려고 한다. 완고하고 단정지어진 나를 벗어나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부디 사이에서 편히 머무르며 세상과 나를 열려있는 넉넉함으로 만나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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