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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Jul 19. 2022

그림자 작업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칼 융

#그림자#빛과어두움#통합하기#투사의우려#전일성회복#그림자속황금#그림자끌어안기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을 벌리려 하니 그 일을 하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시간들여 하려는 의도는 무엇인지 나에게 묻게 된다. 먼저 지극히 계산적인 생각이나 효율성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지금 해야 할 일도 버거운 내가 시간과 공력을 들여 일을 벌린다는 건 일단 싫은 일이었다. 그 다음엔 한다면 일을 잘해야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눌렀다. 이왕 한다면  성과를 내고 잘 갖추어진 일이 되어야하지 않을까하는 평소의 내 성격이 올라오면서 압박감이 나를 눌러왔다. 그런데 그 생각도 잠시, 이제는 억울지심이 올라왔다. 일을 시작하면 나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 같은데 상대는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있는 것인가. 커뮤니티의 한 일원은 오히려 일을 더 키우라고 부추기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어떤 일원은 한 발만 넣고 있다가 아차하면 나갈 것 같이 느껴졌다.


이런 저런 불만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는 소통의 어려움과 불신과 일의 무게를 못이기고 어지러운 마음상태가 되었다.  안에서는 공격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마음이 커져가며 어둡고 거친 생각이 가득해지고 있었다. 그러고나니 이런저런 분석과 번뇌의 상태에서 나에 대한 혐오감이 올라왔다. 나의 부족함이나 배려없음, 사랑없음의 마음이 너무나 절절히  닿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정도의 안목과 아량을 지닌 사람이구나, 이토록 쓸데없는 생각과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일을 함께 하려는 첫마음을 잃고 곁가지를 붙잡고 어지러운 마음에 빠져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밤마다 잠을 설쳤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내 자신의 사고의 틀이었다. 무언가 답이 있다고 여기며 계속 붙잡고 논리와 정답을 찾고있지만 오히려 함께하는 대상에 대한 불신과 회의감이 부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잠못들고 뒤척이던 어젯밤, 나는  모든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모든 번뇌는  안의 어두움이 일으키는 난리법석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안에 이미 있는 미움이 미움을 끌여들였고,  안에 이미 있는 의심이 의심을 불러들여으며,  안의 억울함이 억울함을 생산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안에 가득찬 어두운 나의 그림자가 그것을 펼칠 자리로 다른 이들에게 투사되고 있었다. 평소에 정제되어 있는듯 보였던 자아의 모습은 두렵고 답답한 상황을 맞아 감춰두었던 어둠을 드러내고 투사시킬 희생양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누르고 있었고 감추고 있었지만 나의  부분으로 분명 존재하고 그림자가 표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렇게 시인하고 나니 동안 의심하며 상대방을 분석하고 파헤치고 싶있었던 집착이 모두 헛된 일이며 어리석은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답은 나 자신에게 있었다. 보여지는 모든 어지러운 일은 나의 어지러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은 나의 정화였다. 내 마음이 평화롭고 깨끗한 상태라면 나에게 그런 번뇌의 감정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며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가득한 부정적 에너지가 나와 모두를 의심하고 있었다. 또 거기에 최근 일어난 일로 내 맘에 올라왔던 미움의 감정까지 보태어져 세상은 온통 어두운 일이 일어나는 아수라판으로 느껴지게 했다.


 '내면의 어둠이 바깥으로 눈을 돌릴  인간의 심리는 전일적인 것이 아닌 부분적인 것에 머무른다.'  심리학자 로버트 존슨은 말하고 있다.  안의 그림자를 모르고 그저 타인에게로 부정적 에너지를 투사하고 남탓과 비난을 하고 있다면 나는 그저 반쪽의 자신만을 만날 것이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자신이 지향하는 모습은 자아로 선택되지만, 집단문화에서 부정되는 에너지는 억누르거나 배척하여 무의식에 쌓이게 되며 자아의 그림자로 남게 된다고 한다. 그림자를 무조건 부정하고 배척하면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순간에 폭발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투사되어 피해를 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건강한 자기가 되기위해서는 그림자를 자아와 통합시키고 의식화시킬 필요가 있다. 일단 그 존재를 인정하고 변증법을 거친 후 밝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사랑과 긍정의 에너지가 되살아나야 했다. 이제는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조건적인 긍정에너지로 나와 타인을 바라보아야 함을 알게 된다. 미혹된 감정들이 파먹고 있는  자리를 빨리 정화시키고 밝음으로 채워야 함을 직관이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전에  안의 어둠을 인정하고 수용해주어야 했다.


그림자가 드러나게 해주고, 그것을  것으로 받아들이며, 타인에게 일어나는 감정이  책임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안에서 빛과 어둠의 균형과 정화가 일어나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나에게 성장과 변화가 찾아올  있다면 의미가  것이다. 그림자와 만남으로써 솔직한 나를 만날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림자를 통해 나의 어둠을 알게 되고 밝음과 통합시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선과 , 풍요로움과 빈곤, 사랑과 미움이 모두어우러져있는 인간이라는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안의 이기심과 억울지심과 두려움을 인정하고 간신히 벗어나 사랑으로 나아가고자 마음 먹는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싫어하고 비난했던 사람들의 수준에 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은 황폐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인 나이기에 나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자비로울  있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감사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그림자는 겸손을 가르쳐준다. 에고가 추구하고 싶었던 이상형이 아닌  개똥같은 모습의 내가 있다고, 그게 바로 너의 한쪽이라고 말해준다. 어쩌면 내가 모두 드러나 온전해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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